1994년으로 기억된다. 나는 “전지협(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파업”을 후배들과 함께 지원했었다. 여러 일정 중의 하루, 1학년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훗날 우리는 분명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다. 그 때 오늘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른 노동자의 파업으로 인한 불편함을 말하기 전에 그들의 절실한 요구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 노력하자.“ 그 때의 1학년 후배들은 오늘의 출근길에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오늘의 신입생들은 첫 등교길에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만원 지하철에 불편했다. 이렇게 시민의 발이 볼모가 되는 것은 나의 불편함이다. 하지만 파업요구조건의 옳고 그름을 떠나, 파업참가는 그 또는 그의 가족에게 생존문제다. 자신의 편안함은 중요하고, 이웃의 생존은 중요하지 않다면 이는 몰상식이다. 연대(連帶/solidarity)는 상식의 최소한을 되찾아가는 행위이다. 시민으로써의 불편함을 토로하기에 앞서 같은 노동자로써 서로의 생존을 걱정해주는 것이 상식이다. 오늘은 후배들에게 전화 한 통 하려한다. 아침 출근길에 수고 많았다고. (20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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