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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3 19:23 수정 : 2006.03.03 19:23

민주노총 위원장직을 마치고 2년여 만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온 이수호 선생이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선린인터넷고 2학년 1반 국어과 수업 중에 문학과 삶에 관해 얘기하다 분필 든 손을 가슴에 올리며 감회에 젖어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섀기컷·귀고리 학생들 자유롭고 좋네요”


“차렷, 선생님께~” “반장, 그냥 앉으세요.”

이수호(57)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마다 벌떡 일어나 인사 구령을 붙이는 반장을 자리에 앉혔다. 학생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서로 눈을 맞췄다.

“그냥 제가 들어오면 자유롭게 인사하세요. 고개만 숙여도 좋고 손을 흔들어도 좋습니다.” 이씨는 일제 식민잔재에서 비롯된 학교 안의 군사문화에 대해 짧게 설명을 했다.

이어 하얀 분필을 집어드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칠판에 ‘문학’이라고 크게 썼다. 3년 만이다. 2003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맡아 학교를 떠난 뒤 서울 용산구 선린인터넷고로 돌아와 3일 첫 수업을 했다.

거대한 노동조합단체의 수장을 지낸 이씨에 대해 아이들은 ‘노조 짱 그런 거 했다고 하는데 잘 모른다’며 평범하지 않은 선생님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날 3교시 첫 수업을 앞두고 2학년 1반 이한솔(16)군은 “유명하다고 하는데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윤해리(16)양은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더니 관련 기사 수백건이 떠서 너무 놀랐다”고 했다. 이씨는 수업에 들어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라며 학생들에게 다짐을 했다. “체벌은 물론이고 빈정대는 말투나 남과 비교하는 말로 상처주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존중할 생각입니다.”

이날 이수호 선생님의 첫 수업이 열린 교실은 ‘삭발한 선생님’과 ‘섀기 스타일(바람머리)에 노란 염색을 한 학생들’이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뤘다. 이씨는 2004년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 삭발을 한 뒤 머리를 기르지 않고 있다. 교복도 입지 않고 일본에서 유행하는 머리모양에 귀고리까지 한 남학생에게 이씨가 “개성있고 자유로워 보여서 좋다. 다들 똑같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학생들은 또한번 어리둥절해졌다. 선생님의 삭발을 ‘패션’이라고 여기는 발랄한 학생들과 의외로 꿍짝이 잘 맞을 성싶다.

그는 자신의 경력을 소개할 때 20년을 교단에 섰고, 15년은 ‘딴 짓’을 했다고 한다. 전교조 활동으로 인한 해직과 전교조 위원장을 마치고 복직한 데 이어 이번에 세번째 학교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일부 혈기 왕성한 젊은 교사’로 불리며 늘 교육투쟁에 앞장설 때도 좋았지만,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동료 교사나 학생들과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싶어요. 교직이 제 천직이니까요.”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위원장직을 사퇴한 뒤 주변에서 이런저런 권유도 많았지만, 그가 ‘문학 선생님’으로 학교에 돌아온 이유다.

상담교사 자격증이 있는 이씨는 학생상담실을 맡아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서 생활하게 됐다. “블로그도 만들고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학생들과 소통을 할 생각”이라며 그는 새내기 교사 같은 설렘을 내비쳤다.

이씨는 전국철도노조 파업이나 비정규직 법안 등 노동계 현안을 놓고 여전히 긴장을 잃지 않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뛰어다니며 깔깔대는 소리만 들어도 새봄의 ‘희망’이 보이지 않냐”며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선생’이다.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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