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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7 15:29 수정 : 2006.03.27 15:29

학교에서 문과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사회탐구 과목을 배운다. 윤리, 근현대사, 법과 사회, 한국지리, 이렇게 네 과목을 배우는데 나는 한국지리 빼고 다 좋아하고 잘한다. 그런데 법과 사회 시간에 약간, 아니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첫 시간이라서 전체적인 공부방향과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대학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선생님의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법과 사회 선생님께서 어떻게 우리학교에 들어오셨고 힘든 면접과정에 대해서 들었다. 우리학교는 적어도 7차에 걸친 시험을 치르고 들어온다고 하셨다. 그런데 마지막 면접과정의 관한 얘기에서 선생님께 어떤 이사님(?)이

“노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진지한 모습으로 “교사는 노동자가 아닙니다!!!!” 라고 당당히 외치셨다고 한다. 친구들의 “멋지다~” 이런 말들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글쎄, 그건 아닌데, 왜나만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까, 뒤이어서 선생님께서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고 요즘은 교사가 노동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사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시는 분들과 교사는 다르죠. 저 지금 이 수업만 해주고도 3만5천원을 받습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는 분들과 비교해보면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죠.”

과연 그럴까, 임금에 차이에 따라서 누구는 노동자가 되고 누구는 직업인(?)인가 (스스로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뭐라고 할까) 노동의 범위가 도대체 어디부터까지인지 , 누가 정해 놓은 것일까 ?

우리의 꿈은 노동자 같은 것이 되지 않는 거예요?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조사해보면 항상 1등은 선생님이다. 특히 여자얘들 사이에서는 거의 절반 정도가 교사가 되기를 원한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되길 원하는 것은 안정적이고, 봉급도 평균이상이고, 노후대책이 확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정말 가르침의 미덕을 위해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친구들은 없다. 그렇지만 내 친구들을 욕하고 싶진 않다. 친구들이 벌써 현실에 완전히 몰입된 이유는 경쟁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라고 학교에서부터 어른들이 가르치고 있기 ??문이다. 선생님이 되고픈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아이들은 "안정"으로 꼽는다. 짤릴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까닭은 항상 TV에 나오는 ‘빨간 띠두른 이상한 노조라는 사람들’ 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 진로를 정해야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은 저렇게 살지 말자는 하나의 본보기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노조가 뭔지, 왜 생겼는지,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것인지, 친구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되고 싶어하는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 말이 틀리다는 걸. 치열한 논쟁이 없어도 당연히 맞지 않는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 친구는 거의 없다. ‘노동’이라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하기 ??문이다. 그럼, 도대체 노동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노동] :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단순히 사전적 의미만 살펴보아도 노동은 우리 모두가 하고 있고, 앞으로 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이 공사장에서 땀흘리며 벽돌나르는 ‘노가다’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노동자의 의미를 왜곡해서 알고 있고, 파업 같은 것은 절대로 우리와는 상관 없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공노조가 파업 했을 때 친구들은 그들을 ‘돈 욕심이 끝없는’ 이기주의적 집단이라고 평가하고 자신 같으면 그정도 연봉에 감사히 살겠다고 외쳤다. 어떻게 자신들이 노동자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된디고 한다. 즉, 친구들의 생각은 돈을 많이 벌면 안정적인 전문인, 돈을 적게 벌면 노동자 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들은 돈을 적당히 버는 교사가 되면 노조 따위에 들어서 짤릴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 노조는 집단이기주의의 표본이라고 간주해 버린다.

그러나, 조금만 배우게 된다면 저런 진짜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의 사전적 의미만 찾아봐도 우리는 나중에 우리 대부분이 노동자가 될 것이고, 적어도 노동자의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교사도 노동자이고 교사들도 전교조라는 노조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전교조를 모르는 친구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 -0-) 그리고 노조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손실이 생기더라도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파업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론에서 무조건 ‘불법이다’하면 그대로 믿어버리고 왜 그들이 파업을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철도나, 항공 같은 노조가 파업을 하면 시민을 미끼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집단으로 밖에 비춰주지 않는다. 적어도, 자신의 가족중에 그런 노조가 있다면 쉽사리 말 할 수 있을까.

정부나 언론은 너무 범위가 좁고 한 쪽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면서 합법적인 파업의 정의를 내려버린다. 노동자의 권리나 입장을 생각하면서 파업을 보도하는 언론을 본 적이 없다.(조중동씨) 노동자는 다수이고 경영인들은 소수인데 우리는 소수의 입장만을 알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왜곡되고 폄하된 노조에 대해서 배우고 그들의 정단한 권리에 대해선 전혀 배우질 못한다. 선생님들 조차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나중에 노동자가 될 우리가 같은 노동자를 욕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들도 노동에 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무지로 인한 오해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언젠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알지 못하고 요구 할 수도 없는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지도 모른다.우리 모두가 CEO가 될 리는 없으니까.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에선 초등학교때 부터 노동자의 권리나 역사 같은 것들에 대해서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중고등학교 사회시간에 한 페이지도 채우지 않고 간략하게 노동3권의 정의를 배우고 끝이다. 노동이나 노동자의 개념 자체가 생기질 않는 것이다. 학교 교육에서 조금이라도 더 노동의 의미나 가치, 노동 3권에 대해서 더 자세히 가르친다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꿈이 ’안정적인 삶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정당한 요구를 외칠 줄 아는 그런 당당한 ‘노동자’로 살 수 있는 사회가 오길 꿈꾼다.

우리의 모두의 꿈은 노동자가 힘껏 외칠 수 있는 사회가 오는 것이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꿈을 꾸며 살아가자.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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