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적인'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류기혁씨가 정규직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자살했을 때,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류기혁씨가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했다며 '열사'라는 호칭을 붙이기조차 거부했다. 임단협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는 그저 공문구로 처리될 뿐이었다. 현재 노동운동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결코 사측이나 보수언론의 여론몰이 때문만은 아니다. 매년 투쟁을 반복하면서도,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동료들을 외면하는 모습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조차 대부분 노동운동에 희망을 갖지 못 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부디 모든 사태의 책임을 사측이나 보수언론에게 떠넘기지 말고, 정규직 노조 스스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사측이나 보수언론의 부당한 악선전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국민적 지지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양보하고 헌신하는 자세를 반드시 보여주어야만 한다. 양보와 헌신은 결국 자기희생이다. '어깨걸고 함께 가기 위해' 캠코 정규직 노동자들은 추가적인 금전적 이득을 포기해야만 했다. 외환은행 정규직 노동조합 역시 '단결'을 위해 임금 인상분 전액을 자사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돌렸다. 이는 절대로 사측에 백기투항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측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라. 다만, 자신의 금전적 이익이 아닌 계급적 단결을 위한 요구를 하라.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감싸안지도 못 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캠코 노동조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산별전환을 앞둔 지금, 많은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캠코 노동조합에게서 한 수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땅의 모든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전태일 열사 역시 자신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안정된 재단사의 길을 포기하고 자신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