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27 09:56
수정 : 2006.06.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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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노조 말살을 위한 위장도급 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서울 영등포구 기륭전자 정문 앞에서 71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노조 기륭전자분회 노조원들이 1일 오후 농성장에서 분회 재정사업을 위해 십자수를 놓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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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주최 불법파견 등 비정규문제 세미나
‘파견-도급’ 놓고 첨예한 입장차이 확인
“도급을 포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경영계)
“파견과 도급의 구분은 엄격해야 한다. 도급을 넓게 인정한다면 파견법은 왜 만들었나. 검찰은 불법파견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 해라”(노동계)
검찰이 26일 서울중앙지검 15층 회의실에서 불법파견 판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주최한 세미나에 참여한 노사 관계자들은 파견과 도급 구분을 놓고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중립적 인사인 학계 대표로 나온 고려대 박종희 교수(법대)는 노동계 입장과 같은 맥락의 주장을 펼친 반면, 검찰과 노동부는 법원 판례와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주장하며 도급을 좀더 넓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선 파견과 도급 구분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뭘까? 규제 여부 때문이다. 파견과 도급은 하청에 고용돼 원청회사에서 일하는 등 업무 형태가 비슷하다. 하지만 사용사업주(원청)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파견은 지난 98년 파견법 제정으로 허용업무, 고용시기 등 일정한 규제를 받고 있으나 도급은 특별한 제재가 없는 상태다. 따라서 상당수 기업에서 제조업 등 파견이 불가능한 업무를 도급 형태로 위장해 인력을 활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 노사 팽팽한 신경전 = 파견과 도급 구분을 놓고 노사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사업경영·노무관리 중 어느 하나라도 독립성이 결여된 경우 파견으로 규정하는 노동부 현 고시도 실효성이 의문시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검찰이 이를 더 포괄적으로 넓히면 불법파견 사업주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파견법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이번 세미나를 두고 비정규 노동자들 내부에서는 검찰이 대강 노사 의견을 수렴한다는 핑계로 솜방망이 기준을 만들기 위한 요식행위로 생각 한다”며 검찰의 공정하고 엄격한 법집행을 촉구했다.
이에 반해 이동응 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단지 외형적인 독립성 여부만을 구별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문제”라며 “불법파견 판단의 기준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응 전무는 파견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도 신중한 처리를 당부하기도 했다.
■ 검찰·노동부 기준 전환 움직임 = 검찰에서 나온 이수권 검사는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해석기준이 필요하다”며 “기본적으로 당해 계약관계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종합적·객관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사업경영·노무관리 중 어느 하나라도 독립성이 결여되면 파견으로 보는 노동부 입장보다 좀더 포괄적으로 도급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수권 검사는 또한 “세계적인 입법 추세는 위법파견에 대한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 대세”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적 보편적 추세에 반한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등 처벌조항 완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하갑래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은 “법원 판례 등 기준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학계 대표로 참여한 박종희 교수는 파견과 도급의 엄격한 구분을 전제로 “계약 자체보다도 실질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며 “원청이 근로시간 운영의 결정, 작업비품 제공, 배치전환 등에 영향을 끼친다면 파견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희 교수는 특히 “파견법 취지 상 불법파견에 대한 고용의제(고용된 것으로 간주)를 적용해야 한다”며 그 동안 법원 판례와 상반된 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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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해설]
파견근로란 = 파견 사업주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지급받지만 실제로는 사용 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일하는 업무 형태를 말한다. 1998년에 제정된 파견법에서는 파견이 가능한 업종을 명시해 놨지만, 파견이 불가능한 업종의 사업주들이 도급 형태로 위장해 불법파견 노동자를 활용해 문제가 됐다.
도급이란 = 도급은 수급인과 어떤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체결한 계약이다. 수급업체에 고용된 노동자가 도급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형태가 파견과 비슷해 파견과 도급의 구분이 노동문제에 쟁점이 되고 있다. 파견노동자는 파견법에 따라 보호를 받고 있지만 도급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재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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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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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검찰 ‘쓴소리’ 공방
검찰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 등 노동쟁점을 놓고 26일 이례적으로 세미나를 주최한 가운데 공개 장소에서 만난 노동자들과 검사 사이에 ‘쓴 소리’ 공방이 벌어져 눈길을 끌었다.
이날 세미나에는 노사정, 검찰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여하는 등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속에서 진행됐다. 우선 토론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이 검사들에게 선제공격을 가했다. 방청석에 있던 송보석 금속산업연맹 조직국장은 종합토론에서 “검찰 수사가 노동자에게 쇠방망이, 사용자에게는 솜방망이처럼 작동하고 있다”며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송 국장은 이어 “사용자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반면 노동자 사건은 1년을 넘기는 것이 태반”이라고 비판하며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던 이수권 검사는 “나도 할 말이 있다”며 “사용자쪽은 법률적 쟁점을 빨리 파악해 자료를 제출하는 등 법률 지원에서 노사간 차이가 크고, 소환을 해도 회사관계자들은 적극적인데 반해 노동자쪽은 협조가 미비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검사들의 ‘탁상공론’ 수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세미나에 참석한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는 이수권 검사를 향해 “불법파견을 판단할 때는 현장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 하루만이라도 현장에 내려와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질문했다. 이수권 검사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꼭 내려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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