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07 11:14
수정 : 2006.07.07 11:30
봉건시대 먹이 사슬의 최상층을 점유했던 귀족과 산업 혁명 이후 최하층을 구성했던 생산계층의 자생적 조직인 노동조합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시대와 정서적으로도 정반대인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언론이었다. 그들이 지칭하는 소위 ‘귀족노조’는 매우 많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더 많이 받겠다고 악을 쓰는 극히 이기적인 조직이며 거기에 소속된 조합원은 ‘노동귀족’이라는 특수한 신분계층으로 분류된다. 많은 임금과 노조활동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속해 있어야 가능할 것이며 실제로 귀족노조의 거의 전부는 대기업의 노동조합이다. 그러니까 귀족노조라는 요상한 관용어는 ‘대기업 귀족노조’라고 적시해야 그들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자처하는 언론에 의하면 귀족노조는 최악의 암적 존재다. 그들은 회사야 망하던 말든, 다른 사람들은 굶주리든 말든 자신들의 몫을 더 받아내기 위해 파업을 예사로 저지르고 있다. IMF 이후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 살림은 아예 관심 밖이고 자신들의 파업에 의해 국가경쟁력이 저하될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것 말고도 온갖 불법과 파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공공의 적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언론들이 말하는 귀족노조의 행태이며 상당수의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진실일까?
귀족노조라는 명예스런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수여 받게 된 곳은 LG칼텍스정유 노조가 아닌가 싶다. 2004년 당시, 평균 연봉이 무려 7천만원이 넘는다는 LG칼텍스정유 노조가 파업을 결정하자 온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많이 받는 놈들이 뭐가 아쉬워서 파업을 벌인다는 것인가? 중소기업이 무수하게 쓰러지고 연봉 2천만 원 남짓한 비정규에 취업하기도 어려운 세상에 LG칼텍스정유 노조의 요구는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자칭 보수언론들은 그렇게 기선을 제압한 다음 위력적인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동아일보의 2004년 7월20일 기사는 “LG정유 노조는 임금 인상과 지역사회 발전기금 조성,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금 조성과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 간 교섭대상이 아니다. 임금 인상도 불법 파업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하다고 보기 어렵다. LG정유는 노조 쪽 자료로도 10년 근속 노조원의 연봉이 6천만원에 이르는 대표적인 고소득 직장…”을 운운하였고 이에 질세라 조선일보도 “LG칼텍스정유 노조 등은 이라크 파병 반대, 비정규직 차별대우 철폐, 완전한 주5일제 획득 등을 요구했다. 임금 문제는 아예 주요한 이슈로 내걸지도 않았다. 그만큼 사치스런 요구를 내걸었던 것이다…”등으로 화답했다. 7천이 넘는다는 초고액 연봉은 “10년차가 6천에 달한다”는 것으로 슬그머니 수정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임금 문제는 아예 주요한 이슈로 내걸지도 않았다”는 등으로 직격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앞 다투어 가세하여 조준사격을 퍼붓자 LG칼텍스정유 노조는 마침내 인민재판에 처해지고야 말았다.
잠깐 주요 언론의 논조를 보자. 동아가 노조의 요구로 1.임금 인상, 2.지역사회 발전기금 조성, 3.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보도한 반면 조선은 1.이라크 파병 반대, 2.비정규직 차별대우 철폐, 3.완전한 주5일제 획득 등을 보도했다. 그런데 임금 부분에 있어서 동아와 조선의 보도가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동아가 분명히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고 쓴 데 비해 조선은 임금 문제는 아예 주요한 이슈로 내걸지도 않았다며 말하고 있다. 조선과 동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신문이다. 그런 그들 가운데 하나가 오보를 낸 것이다. 그때 오보를 낸 쪽은 조선일보가 분명하다. 노조가 어떻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동조합의 역할을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노동자가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임금 인상을 요구했지만 조선은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흐려버린 것이다. 그들의 의도는 너무나 빤했지만 국민들의 상당수가 그것을 믿는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 가운데 10년차 근무자의 임금이 6천에 달한다는 것을 되짚어보자. 6천에 달한다는 것은 반올림 한 것으로 판단하여 대략 10년차가 5천5백쯤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10년을 근무했을 때 그 정도쯤 받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04년 당시 LG칼텍스정유에 입사한 대졸 남성 초임이 3천3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의 임금은 나름대로 적정선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액 연봉이라고 거품을 물고 성토를 해대는 데는 기가 막히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연봉은 대체 얼마나 되는지 반문하고 싶다. 조중동에서 10년차 짬밥이면 고급승용차에 골프는 기본으로 누리기 십상이다. 당연히 그들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것을 관철시키고 있다. 자신들이 받는 것은 박봉이고 남들의 그것은 초고액 연봉이라는 말인데…. 그것은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합리화의 극치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감히 노동자들 따위가…”라는 경멸감이 결합되었을 것이다. 선민의식에 찌든 기자들의 눈에 겨우 기름때를 묻혀가며 기계나 돌리고 공구나 만지는 무식한 노동자들이 인간으로 보였겠는가? 그런 놈들이 무려 6천 가까이 받고 있느니 배알이 뒤틀린 나머지 “석사학위 소지자의 초임이 겨우 2천에 불과한데…” 등으로 난도질을 친 것이다. 그런데 메이저 신문사의 기자 초임은 3천에 달하고 있으니 기자들을 전원 박사급 이상으로 뽑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자승자박도 이쯤 되면 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겠다.
설령 노동자들이 7천을 넘는 초고액 연봉을 받았다고 치자. 그들은 그렇게 받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머슴을 살더라도 잘 사는 집에 가서 살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노동조합도 자신이 속한 곳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튼튼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중소기업의 노동자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매우 많은 임금을 지급받더라도 회사가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으며, 그것이 노조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반면에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임금을 받는 직장의 노조는 회사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다. 각각의 노조가 처한 상황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어렵다고 해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돌팔매를 맞아야 한다면 세상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애써 모은 적금으로 아파트를 사고 싶어도 달동네에 사는 소년소녀 가장들이 눈에 밟힐 것이고 승용차를 바꾸려는 사람들은 지옥철로 대변되는 대중교통수단으로 출퇴근하는 서민들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70년대의 견고했던 하향평준화 집단통제시스템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 그런 것을 요구하려면 자신들부터 실행에 옮긴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지만 물론 그들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
그들이 찔러대는 귀족노조가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긴다는 이기주의도 사실과는 다르다. 대기업 노조들의 요구사항 가운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반드시 포함되고 있으며 그것은 LG칼텍스정유 사태를 보도한 조선과 동아의 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그것이 반영되는 과정에 있으며 하청업체의 과도한 출혈도 현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 문제들은 본래 회사가 벌여놓은 것이며 그들이 책임지지 않았던 부분이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칭찬할 만한 행동이다. 그것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진통과 시간이 요구될 것인데, 조중동을 위시한 언론들이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 같다.
자고로 귀족이 있으면 천민이 있는 법.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분명히 천민노조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훨씬 현실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그대들이 가야할 곳은 바로 그쪽일 것이다. 대기업 노조들은 일단 먹고사는 것은 지장이 없을 테니까 천민노조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고통을 대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것이 사회의 목탁이며 칼보다 강한 펜인 언론의 의무이지만 누구도 그들을 찾아 보듬지 않는다. 부패한 노조 집행부가 벌이는 ‘뻘짓’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면서도, 굶어 죽어가는 중소기업은 철저히 외면하는 그들이 너무나 가증스럽다. 그들이 귀족노조에 보이는 관심의 10분의 1이라도 배분한다면 아직 기력이 남은 몇몇 기업은 구해낼 수 있지만 누가 그런 돈도 안 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말인가? 내가 보기에 진정한 노동귀족은 바로 그들이다. 자신들도 노동자라는 사실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이 만들어 낸 귀족노조 앞날은 너무나 험난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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