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저버린 야합이다”
정부·민주노총에 거부 주문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2일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 한국노총과 경총, 대한상의 등 두 사용자단체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을 5년 더 유예하자고 합의하면서부터다.
민주노총과 노동부는 ‘합의 수용이냐, 아니냐’를 고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5일 산별 대표자 회의를 열어 이를 결정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쟁점을 검토해 6일 한 번 더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열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4일 이런 상황에 관해 로드맵 초안자들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2003년 로드맵을 마련해 노동부에 냈던 노사관계제도선진화연구위원회 참여 학자들이다. 당시 3개 분과의 15명 가운데, 두 문제와 직결되는 단결·교섭권 분야를 다뤘던 1분과 소속 4명의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들었다.
이들은 합의에 비판적이었다. ‘원칙을 저버린 야합’이라는 데 예외가 없었다. 기본적 문제의식은 서로 교환 대상이 아닌 두 쟁점을 노조와 사용자가 담합해 유예하기로 했다는 점에 있었다. 이승욱 부산대 교수(노동법)는 “이론적으로 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는 분리된 문제인데 맞바꾼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담합’ 배경은 노사관계 전체의 미래를 내다보기보다 단기적 조직 이해에 함몰된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한국노총이 복수노조 금지로 노조 결성권을 침해받아온 비정규직의 권익 대신 정규직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경영계로선 삼성·포스코처럼 현재 노조가 없거나 무력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기업들의 이해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정부에는 ‘합의 수용’ 대신 원칙에 선 대응을 주문했다. 조용만 건국대 교수(노동법)는 “정부와 민주노총은 여론과 조직 이익에 흔들릴 게 아니라, 국제기준 준수와 장기적 노사관계에 모범이 되도록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임자 임금 노사 자율 결정 △복수노조 허용 등의 국제노동기준 준수가 원칙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 구체적 방법론으론 “노조 규모 따라 전임자 수 차별화”(이승욱), “복수노조의 다양한 교섭형태 인정”(이병훈) 등을 들었다.
이런 지적과 관련해,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한국노총 홈페이지에 올린 서신에서 “(이번 결정을 위해) 현행법 기조대로 실시했을 때 발생할 부분에 대해 엄청난 고민들을 함께 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노조가 전임자 임금을 부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원천적 이유”라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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