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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5 19:12 수정 : 2006.09.25 19:12

KEC, 3년간 90명 정리해고
“17년간 묵묵히 일만 했는데”
직원들 승진 안하려 안간힘

승진 앞에서 벌벌 떠는 노동자들이 있다. ‘과장 꼬리표’를 다는 순간, 헌신짝 버려지듯 회사에서 내몰릴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사오정’ ‘오륙도’ 등 40~50대 직장인 조기퇴직으로 중년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막상 내 얘기가 되고 보니, 기가 막힐 뿐이라는 정길환(43)씨. 스물여섯에 입사해 17년 동안 묵묵히 일만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지 정씨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본사가 있고 구미에 공장이 있는 반도체관련 제조회사인 케이이씨(KEC·노동자수 1200여명) 노동자들은 과장이 되고 싶지 않다. 올 5월25일 40대 과장 27명이 한꺼번에 정리해고됐다. 생산직부터 시작해 최근 관리직까지 20년 동안 일해온 이대호씨(가명)는 “정리해고를 통보받기 전, 6개월 동안 아무런 일도 없이 책상에만 앉아 있는 치욕을 감수하며 대기발령을 참아냈지만 돌아온 건 정리해고 통지서였다”고 울분을 토했다.

과장급에 대한 ‘인원정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9월에도 60여명의 과장들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내몰렸다. 이런 회사 안 분위기로 올 3월 실시된 승진면접에는 과장승진 대상자 169명 가운데 30여명만 겨우 면접을 봤다고 한다. 회사는 승진을 시켜주겠다고 하는데 직원들이 승진을 거부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길환씨는 “승진이 곧 해고 1순위인데 누가 과장이 되고 싶겠냐”며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 이제 비용절감 치원에서 인정사정없이 나가라는 회사 경영진에 배신감이 크다”고 했다.

케이이씨 회사 쪽은 “원자재가격과 물류비용 인상 등 2년 전부터 400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정길환씨 등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케이이씨는 2년 동안 신입사원, 경력사원을 모집했고 올해 800억원의 신규투자를 하는 등 정리해고를 할 정도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지노위의 부당해고 결정에도 27명의 노동자들은 아직 복직하지 못했다. 회사가 지노위 결정에 불복해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확 때려치우고 싶은 맘도 크다. 하지만 우리가 포기하면 회사는 중년 노동자를 ‘고물’ 취급하며 계속해서 정리해고 할 것이다.” 정길환씨가 일주일에도 서너 번 복직투쟁을 위해 서울에서 구미까지 내려가는 이유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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