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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7 14:53 수정 : 2006.11.07 14:58

방수쟁이 부부

표정 없이 댕돌같은 저것도
물렁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지
난달 같은 숨구멍과 자갈 모래 뒤엉긴 채
겉보기만 탄탄한 물건이라지 콘크리트

연변서 왔다지 저 아줌마
암팡진 눈매와 봄날 같은 웃음이 어색해도
7살 아들 친정에 맡겨두고 달변 얻어
신랑하고 돈 벌러 여기까지 왔다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일당 7만원
기술자 소리 듣는 신랑은 10만원
방수쟁이 부부가 작업 중이다
쇼핑센터 화단 벽에 까맣게 아스팔트 바르며
생의 균열까지 메워가고 있다
내년 봄이면 수수꽃다리 비비추 넘쳐날 곳에
올찬 희망 한가득 미리 담아 놓았다
오후 햇살
한 방울도 새지 않고 출렁거린다


일 년만 더 하고 가겠다지 저 부부
미리 사둔 아들 옷 작아지면 어쩌냐고
안전모 벗으며 눌린 머리 매만지는 아줌마
빚 갚고 슈퍼 하나 차려서 붙박이로 살겠다지
가난 앞에 태가지 않는 것 없다더니
누수 없이 행복만 담아내고 싶다지

-은물결-

세월 앞에 허물어지지 않는 것 없다. 건축물은 중력과 물에 저항하는 방법을 찾으며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력보다 더한 것이 있으니 바로 가난이다. 이 별에 살면서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없지만 우리는 흔히 느끼지 못하는 까닭에 가난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돈이 행복의 나라로 가는 문고리도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그런 돈이 세상 대부분의 소망들을 실현시키는 힘이 있다는 거다.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진다고 잠언처럼 말하지만 그 욕심을 버리는 일이 돈 버는 일만큼 어려우니 이 또한 난감하다. 중력과 가난을 병치해 보니 문득 서글프다. 마치 가난을 운명론처럼 이야기 한 꼴이 되었다. 부자가 따로 있겠나. 필요한 것이 남보다 작다면 그 사람이 부자이다. 알면서도 일상생활에 적용하기 힘든 진리지만.

연변서 불법입국한 방수쟁이 부부가 있다. 어쩌다 출입국 관리소의 불시점검이라도 있는 날이면 사색이 되어 숨기 바쁜 사람들이다. 지난여름에 보았던 불법체류자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잡히면 끝장이라는, 차라리 도망가다 추락사하는 편이 더 낫다는 그들의 넋두리가 아프다. 짐짓 모르는 척 눈감아준 나는 방조죄에 해당할까. 투철한 시민의식으로 그들을 신고하고 내쫒아야 마땅한 일일까. 법리를 떠나서 인정상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가난이 싫고 지긋지긋해 자식과 생이별하며 황해를 건넜을 사람들을 매정하게 내치지 못하겠다. 어느 시절인가 내 아버지도 시골 공사판에서 그렇게 지내셨을 것이다. 불법 체류자는 아니지만 새참으로 나오는 빵조차 거르며 모았다가 올망졸망 우리 형제들에게 나눠주러 오셨던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는가. 그 빵으로 아들은 이만이나 체격을 유지하고 제법 공부도 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아버지의 허기짐을 양식 삼아 아들은 성장했다. 저 부부의 공포심과 모자라는 새벽잠을 양식 삼아 중국의 외아들도 잘 자라고 있을까.

저들이 하고 있는 방수공사가 제대로 마무리되길 기대한다. 중력에 의한 갈라짐과 물에 의한 누수(漏水)까지 말끔하게 막아주었으면 싶다. 가난 때문에 누수(漏水) 되는 행복도 꼼꼼히 챙겨 막았으면 좋겠다. 이 현장이 끝나면 두어 군데 더 마치고 돌아갈 테니 돌아가는 날까지 잡히지 말고 한 밑천 마련했으면 고맙겠다. 돌아가서 아들과 함께 푸근하게 살기 바란다. 그 아들도 성장하면 알게 될 것이다. 부모의 공포심이 자신을 키웠으며 어쩌다 걸려오는 전화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주었음을. 화단 안벽에 발라진 아스팔트가 반짝거린다. 덜 마른 모양이다. 부부의 소망처럼 오후 햇살 가득히 담겨있다. 저 햇살은 새나가지 않을 것 같다.

<수필 드림팀 홈페이지 : http://www.sdt.or.kr/>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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