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불안…민주노총도 우릴 못지켜줘”
작년 대규모 감원 충돌 사쪽, 노조선거 개입까지 “민주노총도 노조도 우리를 지켜줄 수 없었습니다.”(코오롱 노조원 ㄱ씨) “유혈이 낭자한 투쟁보다는 불안하더라도 평화를 원합니다.”(〃 ㅇ씨) 대림산업 노조의 해산에 이어, 민주노총의 최대 역점 조직 가운데 하나였던 코오롱 노조마저 지난 21일 민주노총을 탈퇴하면서 노조운동의 현주소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일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을 간략히 추려 전달한 대다수 언론 탓에 ‘무책임한 강성 노조의 몰락’으로 보는 시각도 확산돼 있다. 하지만 진실도 그럴까? 코오롱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투표에서의 찬성률은 95.4%. 지난 2년 남짓 회사 쪽에 맞서 격렬한 투쟁을 벌여 온 점을 고려하면 극적 ‘반전’인 셈이다. 코오롱에서는 2004년 64일 동안의 파업, 2005년 구조조정에 따른 노조원 철탑농성, 집단단식, 위원장 자해 사건 등 노조의 쟁의행위가 이어졌다. 특히 회사 쪽은 노조 선거에까지 개입해, 노동계로부터 대표적인 “악덕 사업장”으로 비난받았다. 노사 사이에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회사 쪽의 정리해고였다. 코오롱은 지난해 2월 경영 악화를 이유로 구미공장 직원 1430명의 35%가 넘는 508명을 감원했다. 특히 여기엔 정리해고된 78명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이들이었다.지난해 7월, 회사 쪽 인사들은 노조 집행부 선거에까지 직접 개입했다. 회사의 뜻에 맞는 후보를 당선시키려 노조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금품을 건네며 직·간접적 선거지원에 나선 것이다. 검찰과 대구지방노동청의 수사와 조사가 이어졌고, 그 결과 회사 간부 1명이 부당노동행위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는 등 회사 간부들과 회사 쪽은 줄줄이 단죄받았다. 하지만 노조를 대하는 회사의 태도는 끝내 변함이 없었다. 노조원들 하나 둘 지쳐가 2년 남짓 공방끝 ‘투항’ 노조원들은 하나둘씩 지쳐 갔다. 회사의 선거 개입에 맞서 정리해고자를 노조위원장으로 뽑았던 노조원들이었지만, 지난 7월 1년 만에 다시 치러진 선거에선 더는 ‘옛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년 전 회사 쪽의 지원을 받았던 후보가 다시 단독출마해 당선됐다. 이어 새 노조집행부는 가입 12년 만에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노조원 ㅊ씨는 “회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민주노총에 관여할 경우 언제든 정리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조합원들 사이에 팽배하다”며 “한마디로 말해 민주노총 탈퇴는 회사가 원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노조원 ㅂ씨는 “민주노총과 노조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묵묵히 시키는 일만 할 뿐”이라며 “민주노총 탈퇴보다도 동료들끼리 서로 믿지 못하고 눈치 보면서 일하는 게 가장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회사와 협력적 노사관계를 얘기하는 현 노조 집행부는 “민주노총이 우리에게 해준 게 없다는 게 조합원들 정서”라며 “(상급 단체에 내는) 의무금을 조합원 경조사비나 자녀 학비 보조금에 쓰는 등 실질적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일배 전 노조위원장은 “경영난과 구조조정을 지렛대 삼은 불법도 감수하는 회사의 강압적인 ‘70년대식 노무관리’가 효과를 본 것”이라며 “여기엔 수수방관으로 일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