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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26 16:36 수정 : 2006.12.26 16:36

전태일 동상 앞의 KTX 여승무원들 06년 10월 31일자 한겨레.

우리은행이 비정규직 행원들을 전면 정규직화하기로 결정했다. 몹시 고무적인 일이다. 어려운 결단이었겠지만, 그 덕분에 3,100명에 달하는 우리은행 비정규직 행원들은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없이 행복한 연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전반적인 사기진작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은행의 선례가 다른 기업에도 모범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차별받고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KTX 여승무원들이다. KTX 여승무원들은 300일 넘게 고된 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봄에 시작된 파업이었지만, 이제 그녀들은 찬바람을 맞으며 희망의 가느다란 실을 이어가기 위한 마지막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단순한 경제적 이유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여승무원들의 투쟁을 추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한(恨)이다. 차별과 냉대, 위증과 책임전가로 인한 깊은 설움이 평범한 '아가씨'에 불과했을 그녀들을 '투사'로, 시대의 작은 상징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우리은행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계약서 작성 당시부터 정직하지 못한 태도로 갈등을 촉발한 일차적 책임이 있음에도, 철도공사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계속 무시했다.


물론 천문학적인 적자규모를 감안하지 않을 수는 없다. 2005년 현재 철도공사가 짊어진 부채는 무려 5조 8천억원에 이른다. 공사 측이 추가적인 비용부담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철도공사의 잘못을 먼저 지적할 수 밖에 없다. 여승무원들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용안정과 성차별적인 근로문화 개선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KTX 승무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교수모임'에서 주장하듯 3명의 비서실 직원을 20명으로 늘리고 비서실 인건비를 7.5배 증가시켰다면, 철도공사의 '고집'이 비용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철도공사가 이 문제를 '기싸움'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철 사장은 임기 내에 부채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 자신도 월급을 1원만 받겠다고 선언하고, 이행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물불가리지 않는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는 또 직접고용되어 일하던 새마을호 여승무원 100여 명을 외주화하겠다고 하니, 그 독선이 지나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정부여당이 한목소리로 '비정규직 보호'를 이야기하는 마당에 철도공사가 앞장서서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격이지 않은가.

정부여당 역시 각성해야 한다. 부채문제는 전시행정에 치중했던 김영삼 정권이 역대 정부에 떠넘긴 과오로, 도저히 철도공사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미리 '정부가 나서서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했다면' 여승무원들이 억울한 희생양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여당은 1년이 다 되도록 하나의 시대적 상징이 된 KTX 여승무원 문제에 팔짱만 끼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실히 도움을 청하는 여승무원들에게 최소한의 동정조차 보낼 수가 없었단 말인가.

그 때문에 정부여당이 이번 우리은행의 '결단'을 소재로 자화자찬하는 건 솔직히 보기 민망하다. 스스로 솔선수범하지 못 하면서 남의 선행에 박수를 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지 않은가.

'의원실, 당 민원실에 쏟아지는 비정규직들의 눈물겨운 소리들을 듣고, 만나고, 고민하면서' 심의했다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정말로 노동계에 신뢰를 주려면, 파업이라는 '과격한' 수단에 의지했던 '눈물겨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조차 보듬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날,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KTX 여승무원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KTX 여승무원 문제는 우리시대 양심을 비추는 거울이다. 다시금 정부여당과 철도공사의 진실한 결단을 촉구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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