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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재 연구원/배규석 연구원/김동원 교수/강신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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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전문가들이 본 ‘현대차 해법’
성과급 50% 삭감 문제로 시작한 현대자동차 노사 갈등이 대화 없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파업 결의, 경영진은 잔업·특근 거부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에 <한겨레>는 14일 강신준 동아대 교수, 김동원 고려대 교수,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원, 조성재 노동연구원 연구원 등 노사관계 전문가 네 사람에게 현대차 사태의 원인과 해법을 물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 사태가 대화 국면으로 바뀌지 않으면 노사 모두 상처만 얻게 될 것이므로 노사 두루 기싸움에 집착하지 말고 먼저 성과급 문제를 풀어야 하며, 노사관계 재정립 문제는 별도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신준 교수(경제학)는 자동차 산업의 노사관계를 연구해 왔으며, 조성재 연구원은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원청·하청 관계 전문가다. 또 김동원 교수(경영학)와 배규식 연구원은 노사관계 전문가다. 현대차 노사 갈등, 원인은 무엇인가?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원=현대차 노사문제는 겹겹이 쌓인 역사적 산물이다. 1998년 정리해고 이후 노조엔 ‘전투적 실리주의’가 자리잡았고, 회사는 지급 능력이 되니까 원칙을 세우기보다 (노조 요구에) 끌려간 측면이 있다. 물론 회사는 성과 제일주의를 중심에 두면서 잦은 임원 교체 등으로 사람을 위하는 경영을 하지 못했다. 노조는 회사를 절대 믿지 않는다. 성과급 문제만 보자면, 노조에 대한 회사의 불만이 폭발한 것 같다. 현대차가 국내외에서 덜 팔리면서 이미 내부에서 위기론이 나왔다. 경영진은 노조가 산별로 전환되면 조금 달라지나 기대했는데, 지난해 노조 파업은 더 심했다. 게다가 민주노총의 정치성 짙은 파업 때마다 현대차가 전면에 계속 나서면서 윤여철 현대차 사장 등 경영진이 더는 참지 못한 것 같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구두합의도 단체협약의 일부분이다. 노조 집행부 교체기와 첫 산별교섭을 앞둔 해에, 회사가 그동안의 관행과 구두합의를 무시하고 성과급을 50% 삭감한 것은 사실상 노조에 싸움을 건 것이다. 지난해 현대차의 생산실적은 목표에서 불과 1.75% 미달했을 뿐이다. 조합원 전체의 문제인 성과급을 놓고 싸우지 않을 집행부가 어디 있나? 회사 쪽도 잘 알고 있다. 특히 금속 산별교섭 중심에 현대차가 있다. 회사 쪽으로서는 노조에 대한 기선 제압이 필요했고, 산별노조 전환을 이끈 박유기 노조위원장에 대한 ‘타격’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연구원=성과급은 해석상의 문제다. 회사는 목표달성과 상관없이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으나, 경영진은 이번 목표 달성의 실패가 회사 안의 문제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조가 민주노총의 정치성 파업에 참여하면서 생긴 것이기에 애초의 150% 성과급을 모두 지급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노조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으로 말미암은 생산차질까지도 모두 고려한 구두합의라고 보고 있다. 어찌 보면 기술적인 문제지만, 이 때문에 기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회사의 치밀한 계획은 아닌 것 같고, 올해 산별교섭 등을 앞두고 노조에 기선을 제압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지금은 노사 모두 ‘여기서 밀리면 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욱이 언론 등에 떠밀려가는 양상이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김동원 고려대 교수=노조가 여론을 계속 무시하면 장기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다. 시무식 폭력 사태는 노조가 전향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옳다. 이 문제가 본질까지 흐리는 상황이다. 노사관계는 위기를 공감할 때 변화할 수 있다. 아직 노조가 힘이 있고, 기업이 경영상태가 좋으니까 ‘힘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현대차 노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데 공감하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성과급 문제는 노사가 믿을 수 있는 제3의 기구가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노사가 명분에 꽉 잡혀 있어 대화가 시작된다고 해도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배규식 연구원=우리나라에서 현대차 노사관계는 기업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확산된다.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다. 노조도 산별노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회사가 준비할 수 있게 ‘신호’를 줘야 한다. 기업 안에서 기득권도 다 챙기고 산별노조까지 강화하겠다고 하면 경영진은 도망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이번 성과급 문제는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리해고 문제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확대될 사안이 아니다. 명분만 찾다가는 두루 더 큰 상처만 남는다. 현대차 노사 정도 되면 이제 ‘지속 가능한 노사관계’를 고민할 때다. 현대차의 경영상황이 계속 좋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강신준 교수=현대차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면 회사에 대한 불신이 대단하다. “1998년 회사가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도 구조조정을 했고, 이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생각이다. 실제 지난 10년 동안 회사는 노조에 신뢰를 회복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윤여철 사장이 ‘원칙’을 주장한들, 통하지 않는다. 노조는 이번 성과급 문제를 또 다시 ‘약속 깨기’로 받아들이고, 열 곳이 넘는 현장조직을 다시 묶어세우고 있다. 노사관계 재정립은 필요하다. 하지만 노조 기념품 비리로 조기 선거를 앞둔 노조 집행부를 압박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회사가 신뢰받을 행동을 해야 한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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