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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일 낮 서울 성동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성동구 외국인 노동자 송년잔치’에 참석한 이주 노동자들이 태권도 공연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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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정책 이대론 안된다 ③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자
이주노동자 40%대 불법체류장기체류자들 문화·기술 습득
이미 우리 사회·산업 일원 #1 “감자탕과 해장국이 제일 맛있습니다.”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의 한 식당에서 만난 미얀마 출신 앤나잉(36)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순대국밥을 입으로 후후 불며 먹는 모습이나 젓가락으로 김치를 다루는 솜씨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농담까지 섞어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23살인 1994년 한국에 왔다. 관광 비자로 입국한 그는 지금까지 줄곧 미등록(불법) 이주노동자로 살아왔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었지만 13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가구 재단 기술자다. 포천의 한 가구공장에서 4년 넘게 일하고 있는 앤나잉은 기술과 한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관리자 구실을 하고 있다. 26명의 공장 노동자 가운데 12명이 미얀마·인도 등지에서 온 미등록 이주 노동자다. “얼마 전 단속 나온다고 해 회사 뒷산에서 네 시간 정도 숨어 있었어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그런 일을 겪죠. 우리가 단속에 걸려 갑자기 추방되면 공장도 힘들 텐데 … 그냥 일할 수 있게 해주면 안 되나요? 한국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추방되면 공장도 힘들텐데그냥 일하게 해주면 안되나요” #2 2002년 키르키스탄에서 관광비자로 입국해 미등록 이주 노동자가 된 알마이(27)는 경기도 부천의 중소 무역회사의 ‘수출역군’이다. 건설 일용직 등 불안정한 일을 전전하다가 지난해 10월 겨우 자리를 잡았다. 섬유원단 수출을 하는 회사 직원 11명 가운데 그만 외국인이지만 중앙아시아 쪽 영업은 모두 그의 책임이다. “텔레비전, 책 등 닥치는 대로 보고 읽으며 한국어를 배웠어요. 한국어를 못하면 불이익이 크거든요.” 알마이는 3년 전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회사 사장도 그를 친아들처럼 아낀다. ‘불법체류’ 딱지가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에서, 사장은 알마이의 세 살 난 아들을 ‘양아들’로 입양해 호적에 올렸다. 회사 사장인 ㄱ씨는 “알마이는 우리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며 “비자문제 때문에 단속에 걸릴까봐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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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노동자 기업규모별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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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정부가 2002년 벌인 ‘불법체류 외국인 자진신고’ 자료를 보면 미등록 이주 노동자 25만여명의 48.9%인 12만명이 30인 미만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김범용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소장은 “얼마 전 단속으로 한 제조 영세업체에서 외국인 12명 중 7명이 잡혀 추방됐다”며 “한국인 노동자를 당장 구할 수 없는데다, 고용허가제로는 인력을 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공장 문까지 닫을 뻔한 적도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 인력 부족률이 4.35%(9만9천명)에 이르는 등 인력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저출산·고령화로 국내 인력수급 전망도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외국 인력의 활용은 점점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해 내놓은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10~15년 사이에 국내 인력난 발생이 예상된다”며 “외국인 근로자는 2020년까지 100만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우삼열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은 “장기체류 이주 노동자들은 언어·문화·기술 등 이미 한국사회에 충분히 적응해, 고용주들이 필요로 하는 준비된 인력”이라며 “무조건 추방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어떻게 조화롭게 정착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김명진 수습기자 dandy@hani.co.kr
인권단체는 “합법화가 해법” 정부는 “자진출국 유도”
불법체류자 근본대책 없나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보호시설 화재를 계기로 단속·추방 위주의 불법체류(미등록) 이주노동자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대체로 합법화를 근본 대책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정책이 단속과 강제추방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결국 합법화로 가야 한다”며 “출입국사무소에 불법체류를 자진 신고하면 비자를 내줘 일정 기간 동안 일을 하게 하고, 고용주와 노동자가 고용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면 출국했다가 다시 돌아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견해는 추방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결코 불법체류자를 줄일 수 없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유성환 안산이주민센터 사무국장은 “법무부는 단속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단속의 실효성은 미지수”라며 “3년 동안 일해야 겨우 ‘브로커’ 비용을 갚는데, 손에 쥔 것도 없고,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이주노동자가 자진 출국하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한국에 들어오려는 ‘대기자’들이 많아 출국했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자진출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자진신고땐 비자 내줘 일정기간 일할수 있게”
‘합법화 인정’ 형평성 위배, 고용허가제 근간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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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노동자 기업규모별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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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실 사이 벽없어 화재피해 키워
여수 출입국사무소, 설계도면과 달리 시공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가 설계도면과 달리, 보호실 사이에 벽을 설치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정강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사무소장은 14일 “2004년 12월 준공된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건물 설계도에는 보호실 사이를 비내력벽(내부 공간을 구분하는 벽)으로 시공하도록 돼 있는데 실제는 다르게 시공됐다”며 “현장 확인 결과, 화재가 발생한 304호와 305호 사이도 쇠창살에 나무판자를 붙여 놓는 바람에 뚫려 있는 위쪽 공간으로 유독가스가 상승기류를 타고 이동해 306호의 4명이 질식해 숨졌다”고 밝혔다.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김용상 관리과장은 “보호실 벽이 설계도면과 달리 시공된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304호 발화 추정 지점 맞은편 바닥재가 탄 흔적이 없어, 방화 용의자가 이 바닥재 일부를 뜯어 불을 붙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여수/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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