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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20 15:22 수정 : 2007.02.20 15:39

현대자동차 노조가 12일 울산시 북구 양정동 울산공장 인근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참가 대의원 300여명의 만장일치로 31일까지 1단계 파업을 하기로 결의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일부 대의원들은 이례적으로 찬반투표를 요구하다 퇴장했다. 울산/연합뉴스


(‘한겨레 사설을 읽고’에 이은 추가 나의 소고)

지난해 말, 송년 한겨레 모임에서 홍세화 기획위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평생 누구에게 사인을 부탁해 본 적도 없고 받아보지도 않았던 내가 그의 사인을 받고선, 집사람과 딸 아이에게 보여주며 즐거워한 적이 있다. 늘 해맑게 웃는 미소가 아름답고, 우리 사회의 똘레랑스를 강조하는 그에게, 이미 권력 집단화 되버린 대기업 노동조합에 대한 나의 소견을 밝혀 본다.

14일자 그의 한겨레 칼럼 “어제의 양심수와 오늘의 양심수”를 읽고 양심수, 양심이 무엇인지 새삼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봤다.

네이버 사전에, 양심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이라고 정의하였고, 캠브리지(Cambridge) 영어사전에 따르면, “자신 행동의 도덕성을 판단하여 잘못된 것이나 책임져야 할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자신의 내면적인 것” 라고 한다 (the part of you that judges the morality of your own actions and makes you feel guilty about bad things that you have done or things you feel responsible for). 그렇다면 양심수란 자신의 도덕적 양심에 따라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생활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일게다.

본인 자신의 도덕적 가치판단에 따라 행동했다면 양심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도덕이란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공정성뿐 아니라 진실성 그리고 사회적 공감대 부분이 본인 자신뿐 아니라, 보편적 사회인식의 기준과 관습에도 함께 부합돼야 한다는데 있다.

본인이 지난 글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 회사를 지칭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지난 먼 얘기는 차지하고 바로 얼마 전까지 신문·방송에 떠들썩 했던 몇 가지 기사를 보자.

지난 19년간 한차례 거름도 없이 매년 임금투쟁을 벌여온 울산 현대차 노조가 지난달 말 성과급 미지급 문제로 파업을 강행, 결국 회사측 굴복을 받아낸 후 파업을 종결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수사 결과, 2003년엔 파업철회 조건으로 노조위원장이 경영진으로부터 뒷돈 수뢰혐의가 드러났다. 과거 동료 후배들의 입사조건으로 채용비리를 저질렀던 그들이다. 지난 주엔 현대 상용차 전주공장이 늘어나는 주문 생산량을 소화하기 위해 노조에 2교대 근무를 요구하자 강성노조의 반대로 무산, 추가 모집한 생산직 직원은 입사 대기되고, 회사는 해외공장으로 물량생산을 이전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났다. 이미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만에 새 조선소를 건설 중이며, STX조선도 2007년 4월부터 중국 랴오닝성에 새 조선소를 착공하면서 그 곳엔 동반 부품업체와 함께 새 일자리가 10만개나 창출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그간 몇 년간 국내 대기업의 한국탈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대기업이 국내에서 기업하기 힘든 이유로 제일 먼저 꼽는 것이 ‘강성노조와 노동유연성 문제’라고 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대기업 노조는 회사 경영진과 기 싸움을 벌이며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라는 명목 하에 매년 임금인상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귀족노조’라는 칭호를 받으며 정치 세력화 되어버렸다. 인상된 노동자 임금은 제품 단가로 반영되고→ 소비자 물가상승을 부추겨 국민 계층간 가처분 소득격차 심화뿐 아니라→ 부메랑이 되어 다시 그들 임금 노동자의 실질소득 하락으로 반영되고→ 또 다시 임금투쟁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우리경제의 고질병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엄중한 현실은 일할만한 나이의 청·장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으며, 장년 가장들의 구직포기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삶의 질 향상은 고사하고, 생계문제로 이혼가정이 점점 늘어난다.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책은 이미 약발이 듣지 않으며 경제적 양극화 문제는 갈수록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대기업 노조는 폭력과 시위를 앞세워 ‘자기들 배 채우기’만을 일삼고 있으며, 천박한 배금주의에 빠져 경제적 상류층을 닮아가려 안달하며 자기들만의 기득권 둥지를 틀고 있다.

한편, 최근 기업 경영자의 사면복권 발표와 관련해, 삼성·현대 등을 포함한 그들 대기업 총수들에게 민·형사상 더욱 엄중한 처벌이 내려졌어야 한다고 본다. 회사자금을 사적 자산으로 배임하여 편법증여하고 비자금을 조성한 경영총수는 당연히 구속 처벌받고, 회사는 파산했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그 동안 관습적으로 내려왔다”는 부패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겠나. 우리는 엔론(Enron), 월드컴(WorldCom)사태를 보며, 서구식 윤리경영의 정수를 보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해직되어 거리로 다시 내몰리고, 생산시설에 기 투자된 돈 회수를 위해 정부는 국민의 공적자금을 재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 모두는 제2의 IMF를 다시 한번 겪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 당장 서민대중은 먹고 사는 문제가 급박하기에 이것 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날마다 늘어나는 거리의 노점상들을 보라. 이 해묵은 유착관계를, 국가의 장래를 바라보며 정계, 국회, 법조계 그리고 기업계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양심적으로 풀도록 간절히 바라며 좀 더 시간을 줘보자.

<한겨레>에 묻고 싶다. 지금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 유무를 떠나 임금착취나 인권탄압을 받는 집단이라고 진정 생각하는지. 지금 머리띠를 두르고 찬반투표를 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모습에서, 마치 일제 식민시기의, 군사독재시절의 저항민중 모습을 본다고 착각하는 것은 분명 아닐께다. 지금은 70년대 초 전태일 열사 시대처럼 근로자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과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는가. 누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압력을 가하는가. 그리고 이들 노조가 아직도 사회적 소수이고 약자라는 말은 하지 말자.

성과급 문제로 파업하는 현대차 노조원 @AP Photo

이 사회의 진정한 양심적 노동자가 누구인가. 대기업 노동자인가? 아님 그 밑에서 말없이 묵묵히 1차, 2차, 3차 하청 일을 맡아보고 있는 80~90%의 국내 대다수 중소기업 노동자인가? 대기업 파업이 종결되면 바로 중소기업 납품단가 인하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이제 누구도 새삼스럽지 않다. 기업의 국내 투자부진과 해외 생산기지 이전으로 절대적 일자리 감소는 우리 국민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실업으로 인해 대졸청년이 자살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생을 포기하고 있다. 또 경기불황과 자영업의 실패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로 목청 높이기에는 이젠 우리주변에 안타까운 생계형 범죄가 너무 많이 다가와 있다. 더구나 한가로이(?) 근로조건과 수당에 목숨 걸고 있는 특정 근로자집단 권익에 동조하기엔 우리 주변환경이 너무도 숨가쁘고 급박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 전부터 영국은 여왕이 외국기업의 자국유치를 위해 직접 나서고 있고, 2002년 현대차 공장이 들어선 알리바마 주에서는 주정부법을 바꿔가며 공장부지로 만들어주고, 20년간 법인세 면제는 물론, 각종 인프라구축을 주정부비용으로 마련해 주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해 줬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잦은 노동파업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미 산업·사업위원회는 (U.S. Business & Industry Council) 미국 노동시장의 고용 유연성을 설명하면서, 알리바마주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 노조결성(UAW)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고 있으며(Keeping unions out of automotive plants and other industries is among the missions of the Business Council of Alabama), 노조가 필요없는 주(a right-to-work state)를 만들기 위해 매년 역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가 좋은 기업유치를 위해,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모두 혈안이 되고 있는 시대이다. 심지어 정치적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도 예외가 아니다. 이젠 기업경영자와 노조도 적대관계가 아닌 공생관계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기업가들이 노동자의 삶을 충분히 생각해야겠지만, 노동자도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줘야 한다.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에 서로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만일 개인이 실업사태에 당면할지라도 재취업 할 수 있고 지금과 같이 어떠한 선택적 대안 없이 개인과 가정이 사지로 마구 내몰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보다 먼저 노사분규를 겪고 이젠 노사 선진국으로 자리잡은 북유럽, 아일랜드 나라에 가서 보고 듣고 좀더 배우자.

<한겨레>가 보다 집중 조명하고 대안 제시해 줘야 할 노동자 집단은 대기업이 아닌 아직도 열악한 환경하의 중소기업 노동자이다. 그리고 국내에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 새터민들과 하루 벌어 힘겹게 사는 생계형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다. 이들에게 우리사회에서 함께 살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인 삶의 모델을 만들어 줘야 희망이 솟지 않겠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회 정의와 관계없이, 스스로 합리화하며 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양심의 도덕적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는 시대적 사회 합의 문제일 수 있다. 지금 이 시기에 우리사회가 시급히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똘레랑스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집단 이기심으로 인해 타인과 사회에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는 기본적인 공동체 윤리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각국의 모든 사람이 생존경쟁의 긴장감 속에 살고 있다.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도태되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국경없는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고 있다고 우리가 인간의 양심까지 저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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