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는 1982년도에 전셋집을 처분해서 장만한 150만원을 주고 들어와 3년 동안 아이방(일용직)을 하고 겨우 자리잡았어. 그런데도 도중에 다쳐 한 달 동안 쉬고 왔더니 벌써 다른 사람한테 내 자리를 내줬더라고.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려!” 술기운을 빌려 울분을 토했다. “요즘은 취직이 안 되니까 대졸 출신 젊은 애들도 많이 들어오더라.” ㄷ씨가 말을 받았다. 그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전에 들어온 애한테 얼마나 주고 들어왔냐고 물어보니 2천만원을 줬다는 거야. 자기는 연봉 2500만원에 보너스까지 받는다는 소리를 듣고 왔다더라고. 밖에서는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라며 답답해했다. 검찰수사로 변화 기대속 “과연 바뀔까?” 비관도
“검찰이 수사를 하니까 뭔가 바뀌지 않겠느냐”며 대화에 끼어들었더니, 이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인데 바뀌긴 뭐가 바뀌어!”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ㄱ씨는 “이번에 위원장이 구속되면서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는데,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그 사람은 지금 노조위원장과 이전 노조위원장 ‘꼬붕’이라데. (이들은 비상대책위가 이날 해산을 선언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문제가 터지니까 조직을 지키려고 몇 놈이 책임 뒤집어쓰고 감방에 가는 게 조폭들과 뭐가 다른 거야!” 사태수습을 위해 구성된 비상대책위에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ㄴ씨도 “두고 보소. 부산항운노조가 오문환(전 위원장)하고 박이소(현 위원장) 손아귀에서 벗어나면 내 손에 장을 지질게요”라며 ㄱ씨의 말에 동조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뻔히 알면서 검찰만 쳐다보고 있는 조합원들도 문제 아니냐”고 하자, 모두 “맞는 말”이라며 술잔을 비웠다. ㄱ씨는 “요즘은 우리끼리 무전을 할 때 ‘이번에 갈아치워야 우리 형제들이 잘 살 수 있어요. 알겠지요’라고 대놓고 말해. 그러면 저쪽에서 ‘오바!’하고 바로 답을 해와. 반장, 소장 들으라는 게지. 지들이 자기 소린 줄 알지만 들어도 어쩔 거야. 요즘은 만나도 아는 체도 않는데”라고 말했다. ㄴ씨도 “이젠 우리가 까발려야 되는 거야. 이번에 왕창 못 바꾸면 내 살아서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건데. 밑에서 우리가 밀어붙이면 자기들이 어쩔 거야!” 열을 올렸다. 가장 젊은 ㄷ씨는 “요새는 이런 거 써올리는 홈페이지(항운노조 민주화쟁취본부)도 생겼데. 행님들도 집에가서 애들한테 물어서 홈페이지에 한 번 들어가 보소. 애들보고 글도 좀 적어달라 하고”라며 ㄱ씨와 ㄴ씨에게 홈페이지 주소를 적어줬다. ‘취중진담’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끝이 났다.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부산항운노조는 밑에서부터 위기와 기회를 함께 맞고 있었다. 부산/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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