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30 20:12
수정 : 2007.04.30 23:05
비용부담 인한 구조조정으로 해고 통보
아파트 관리소장과 다투다 불질러 숨져
저임금에 장시간 일하는 아파트 경비원 등을 보호하려고 올해부터 감시단속 업무에 적용시킨 최저임금 제도가 오히려 60살 경비원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30일 오전 8시50분께 서울 강동구 명일동 ㅎ아파트 입구 3층짜리 상가건물 2층 관리사무소에서 이 아파트 경비원 허아무개(60)씨가 흉기(과도 칼)를 들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금아무개(54)씨와 다투다, 바닥에 휘발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이 사고로 허씨가 불에 타 그 자리에서 숨졌고, 금씨는 밖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
허씨가 아파트와 경비용역계약을 맺은 ㅅ개발 관리소장 금씨를 찾아간 것은 느닷없이 닥친 해고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ㅅ개발 담당자는 “두달 전 ㅎ아파트 주민대표자들이 ‘최저임금이 올해부터 적용되고, 경비초소도 7곳에서 4곳으로 줄일 것이니 경비원 20명 중 6명을 구조조정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6명에게 해고가 통보됐고, 이날이 허씨 등 6명의 경비원에게는 아파트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격일로 24시간 일하면서 90만원 가량의 임금을 받았다.
허씨와 4년 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 경비원 ㄱ씨는 “허씨는 자신이 해고 대상자가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많이 억울해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동료 ㅂ씨는 “아파트 주민대표자들이 6명을 해고하면서 3명을 새로 아르바이트로 채용하려고 했다”며 “이날 아침 허씨가 ‘3명을 뽑을 거면 나를 채용해 달라’고 관리소장에게 말하러 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건이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유족들도 “평소 말이 없는 사람이라, 두 달 전에 해고 통보를 받은 것도 몰랐다”고 비통해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으며 주민대표자들이 너무 일방적으로 해고를 추진했다는 주장도 폈다. 주민 ㅇ씨는 “주민대표자들이 경비원을 해고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묻지 않고, 자신들이 알아서 ‘비용이 절감되니까 좋아하겠거니’ 생각했던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주민 ㅂ씨도 “최저임금이 적용된다고 얼마나 많은 돈이 나가겠냐”며 “이 아파트는 주차난이 심각해 경비원들이 충분하지 않으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닐 것”이라고 했다.
최저임금 적용에 따른 아파트 경비원 해고는 ㅎ아파트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경기도 분당, 대전 등의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 부담을 이유로 경비원들을 잇따라 해고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이전보다 임금이 조금은 올라갈 테고, 관리비로 임금을 충당했던 주민대표자들이 비용 상승을 우려해 해고를 하는 것이다. 이민우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경비원들은 일반 노동자 최저임금(시급 3480원)의 70~80%를 적용받게 되는 등 실제 생각했던 것보다 큰 부담은 아닐 것”이라며 “무작위로 해고하는 것은 중단돼야 한다” 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도 “자칫 이번 사건이 최저임금이라는 제도의 문제점으로 비칠까 우려스럽다”며 “경비원들은 대부분 고령자로 다른 직장을 잃고 생계를 위해 생활하는 사람들인 만큼, 비용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감시·단속적 노동자란 아파트 경비원, 건물 경비 및 수위, 청원경찰, 보일러공 등 감시·단속을 주업무로 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이들은 현재 아파트 경비원 21만명을 포함해 모두 33만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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