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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4 18:31 수정 : 2005.03.24 18:31



사진 24일 오후 인천 동구 만석동 동일방직 인천공장 앞에서 지난 1978년 이 공장에서 부당해고당한 뒤 민주화운동명예회복법에 의해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원직복직 촉구대회를 마친 뒤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사무실에 들어가려하자 공장 직원이 막아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인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복직 촉구 나선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


“회사에서 쫓겨난 지 27년이 됐지만, 언젠가 현장에 돌아가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잊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24일 오후 2시 인천시 동구 만석동 동일방직 앞에 이 회사에서 27년전 강제로 쫓겨났던 여성 노동자 40여명이 ‘해고자 124명 전원을 원직복직시켜라’는 현수막과 ‘원직복직’이라고 쓴 종이카드를 들고 나타났다.

20대의 어린 나이에 회사에서 쫓겨난 뒤 서울 명동성당과 노총회관, 도시산업선교회 등을 옮겨다니며 이씨와 함께 농성을 벌이다가 80년 5월 비상계엄으로 강제 해산된 이들 여성은 40~50대의 중년이 돼 다시 회사앞에 모인 것이다.

똥물 세례에도 노조 지키려다 끝내 쫓겨나 ‘빨갱이’ 된 124명
결혼해서도 ‘전력’ 드러날까 가슴졸인 27년 세월…

1978년 4월1일 회사의 노조 탄압에 맞서다 해고된 동일방직 노조 지부장 이총각(58)씨는 “20대인 내가 푸른 작업복을 입고 실짜는 기계 앞에서 일하는 꿈을 지금도 자주 꾼다”며 “빨리 꿈이 현실로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7년전 이들의 민주노조 운동은 이미 2001년 11월 정부에 의해 정당한 노동운동으로 인정됐지만, 아직 이들의 복직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날 똥물을 뒤집어쓴 그 자리에 다시 선 이들은 경찰의 무자비한 연행에 맞서 알몸으로 저항했던 20여년전 모습이 떠오르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들은 1978년 2월 21일 노조 대의원 선거를 강행하는 노조 사수 투쟁을 벌이다가 그해 4월1일 124명이 해고됐다. 당시 23살의 나이로 해고된 김용자(50)씨는 “회사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회사와 경찰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뿌리는 바람에 다른 공장에 취업해도 쫓겨나기 일쑤였고, 어렵게 결혼한 동지들은 시집식구에게 동일방직에 근무했던 것이 알려질까 쉬쉬하며 살았다”고 전했다. 김씨는 “해직된 뒤 11명이 구속되고 해고자 대부분이 경찰에 연행돼 여러차례 구류를 살기도 했다”며 “지금은 적지 않은 동지들이 환경, 노동 등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인정 받았지만 ‘푸른작업복’ 꿈 잊은적 없어

당시 동일방직해고자 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상 신부는 격려사에서 “당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를 빨강이로 낙인찍었지만 지금은 국가기관에서 정당한 평가를 해주는 등 많이 바뀌었다”며 “모두 하나가 돼 꼭 복직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해고자 가운데 70여명은 지난 2001년 11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고, 이 가운데 1차로 34명에 대해 회사에 복직을 권고한 상태다.

23살에 해고된 최연봉(50)씨는 “복직해 일한 뒤 자유롭게 퇴직할 수 있어야 진정한 명예회복”이라며 “정부와 동일방직은 부당해고에 대해 사과하고 원직 복직, 해고 기간 임금 지급 등 원상회복 조처를 시행하라”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원직복직 촉구대회를 마친 뒤 회사 정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갔으나, 회사쪽은 “법대로 하라”고만 밝혔다. 인천/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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