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부터 송파구청에서 11년동안 근속해온 노계주 씨는 몇 주전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고 정든 직장에서 쫓겨나야 했다. 노 씨는 행정사무보조로 일한 자신이 왜 '사업 종료'를 구실로 해고되어야 하는지 기막혀 했다. 노 씨는 이후 구청장에게 몇 번이나 편지를 보내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아무런 답장도 받지 못 했다고 한다. 이번에 해고대상이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기에, 적어도 구청장은(김영순 송파구청장은 서울시 최초의 여성구청장이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 했다. 노 씨는 미처 알지 못 했지만 사실 김영순 송파구청장은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단행했다. 지난 2002년부터 ARS 민원업무를 보아온 임정주 씨 역시 하루아침에 해고통지서를 받아야 했다. 작년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상정될 때에 한가닥 "희망의 빛"을 보았다는 임씨 역시 해고의 칼바람에서 자유롭지는 못 했다.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비정규직 일이나마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임씨는 자신이 해온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면서 앞으로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대항"할 것을 다짐했다. 이처럼 송파구청은 수 년간 저임금 및 정규직 공무원과의 차별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일해온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헌신짝처럼 내버려, 그녀들의 한과 설움을 깊게하고 있다. 이것이 '세계 속의 으뜸 송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송파구의 진정한 이면인가. 송파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사회체육견학'을 명목으로 한 관광성 남미 외유에만 1,800만원을 쓴 김영순 구청장이, 연봉이 1,150만원에 불과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다른 구에 비해 비교적 여유가 있는 송파구가, 공동세 도입에도 반대하면서 그 동안 구를 위해 헌신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내쫓는데도 열심이라면 대체 어느 누가 송파구를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으로 보게 될 것인가. 반대로 송파구의 이미지가 실추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6월 26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해 2년이상 근속한 계약직 9만 4,122명 가운데 76.3%에 달하는 7만 1,861명을 정규직화하기로 했다.(정확히는 '무기계약'을 통한 민간인 정규직화로, 공무원 임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송파구청의 사례가 보여주듯 일선 지자체에서 정부 발표를 종이조각으로 만드는 행태를 거리낌없이 보인다면, 어느 누가 정부의 약속을 곧이 곧대로 믿고 따르겠는가. 사실 정부의 '종합대책'에도 허점은 있다. '종합대책'은 "정부의 복지, 실업대책 등에 의한 일자리 제공으로 인력을 사용하는 경우" 정규직 전환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이번 송파구청에서처럼 정규직 전환대신 계약해지 후 '공공근로'로 재계약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 해고를 하는 편법을 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그런만큼 강력한 행정지도 없이는 '대책'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높다.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선의로 시작된 '대책'이 정말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빛"이 될수 있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거리로 내몰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정규직 공무원들로 구성된 공무원 노조 역시 각성해야 한다. 공무원노조 송파지부는 강력한 어조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매일 아침 선전전에 '연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연대는 사실상 회피하고 있다. 물론 여력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속마음은 이른바 '임금총액제'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자신들의 수당 등 처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인 듯 하다. 이렇듯 실상은 '이익집단'으로서의 모습에 충실하면서, 사회의 보편 공익을 수호하는 '국가의 왼손'을 자임할 수는 없다. 앞으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시늉만 하는 '연대'를 하다가는 언젠가 수많은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공무원노조에 집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무원노조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대해 불평만 하지말고, 어째서 공무원노조가 단순한 이익집단이 아닌지 실질적인 행동을 통해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공무원들의 비효율, 무사안일, 구태의연과 불친절을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뉴스에서는 일도 하지 않고 태연히 야근수당을 챙겨가는 공무원들의 추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는 일은 똑같아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수당혜택은 커녕 온갖 차별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정규직 공무원들과 차림새는 똑같아도, 그렇기 때문에 덩달아 억울한 비난을 당할 때가 많아도, 고작 월 평균 8~90만원의 임금을 받으면서 시민들에게 싫은 표정 한 번 내색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들이 지금 우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송파구청, 정부, 공무원노조 모두 실효성있는 대안으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일 책임있는 기관들이 자기 일이 아니라며 계속 발뺌을 한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음을 시민들이 여론으로서 직접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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