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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비정규직법’의 불합리성과 이랜드사태 |
특정업무에 대한 외주화와 비정규직노동자대량해고 그리고 이에 맛선 비정규노동자의 매장점거농성으로 이어지는 이랜드 사태에 대해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와 노조관련자는 이 사건을 자본에 의한 노동자 탄압으로 규정하며 매장점거 농성과 이랜드 제품에 대한 대재적 불매운동을 벌일 것을 다짐하는 반면, 노동자와 노조 측의 매장점거 농성을 '기업에 대한 노조의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주 측의 대립은 이번 사태를 대하는 양자의 입장이 얼마나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노사 간의 대립을 원만하게 중재해야할 의무를 가진 노동부장관(이상수)은 노조측의 매장 점거를 사실상 불법행위로 인정하여 노조측이 농성을 풀지 않을 경우 공권력을 투입할 방침을 밝힘으로서 노조측의 극렬한 반발과, 여론과 시민사회로부터 '사측의 불법노동행위를 사실상 묵인한 형평성을 상실한 행위'라는 비난을 자초하게 되었다.
비정규직법과 이랜드 사태
그렇다면 노(勞)와 사(使)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정부와 시민사회가 사실상 상반된 대치를 보이고 있는 이랜드사태의 진실은 무엇인가? 잘 알려져있다시피 비정규직법은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고 비정규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한다는 법의에 의해 입법되었지만 이랜드 사태는 입법과정에서 노조와 시민단체게 우려했던 법안 악용에 대한 부작용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랜드 측이 비정규노동자를 대량 해고하고 계산대의 수납 업무를 외주화한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당한 기업행위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기간제근로자의 정규직화와 차별금지조항을 회피하기 위한 불공정노동행위로 판단해야 하는지를 비정규직법 시행령을 통해 명확하게 판별 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처럼 노사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이나, 노사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노동부장관이 법리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시민사회의 비난을 받는 혼잡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혼란은 이 법이 입법과정에서 입법취지 보다는 노사정 당사자간의 이해대립에 대한 적당한 얼버무림으로 졸속 처리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이란 것이다.
오늘날 사태를 면밀히 살펴보면 비정규직법의 시행을 앞 두고 이랜드 측은 기간제근로자를 합법적으로 해고하고 차별금지조항을 회피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물밑 작업을 해 온 것으로 보여진다. 사측은 기간제근로자의 해고를 정당화하고 노조의 반발을 최소화하기위해 노조가 결성되지 못한 울산.창원 등의 지방점포부터 계산 업무의 외주화를 진행하였다.
한편 수도권 점포에서는 계산업무의 외주화를 손쉽게 하기위해 비정규노동자와 고용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도록 이른바 0개월 계약서를 써왔고 마침내 아웃소싱이 결정되자 특정업체와 용역계약을 맺으면서 0개월 계약서에 서명한 노동자를 해고했을 뿐 아니라 계약기간이 남은 노동자들에게까지 사표를 내고 용역회사에 입사할 것을 종용하는 등 모호한 법의 사각지대를 오가며 치밀한 준비를 해 온 것이다.
현재 법 체계에서 비정규직법은 이랜드 사용자 측은 자신들의 노동행위가 비록 사회적 도덕적 지탄을 받을지라도 "불법은 아니다."란 법적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다. 이것은 노동부가 노조가 '사측의 불법노동행위'라고 주장하는 행위들에 대해 선뜻 '불법'이라고 규정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잘 알수 있듯이, 이랜드사태는 사용자 측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고용을 회피할수 있다는 비정규직법의 맹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불합리한 법 개정위해 시민사회가 압박가해야
이랜드사태는 기간제근로자에 대한 사측의 2년계약 만료전 악의적인 해고나 아웃소싱에 법이 비정규노동자를 전혀 보호해 줄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지만 비정규직법은 입법과정에서 사측의 입장을 과도하게 수용함으로서 사실상 본래 입법취지에 충실할수 없는 절름발이 법으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시민단체와 노조의 시각이다.
일반적으로 이 법이 비정규노동자를 포괄적으로 보호하는 법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실상 법이 보호하는 대상은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근로자에 국한하는 문제를 가진다. 즉 하청 등 외부용역 업체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비정규직법의 보호대상이 되지 않음으로서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에 대한 부담을 느끼면 언제든지 특정업무를 외주화함으로서 노동자를 법의 보호막 밖으로 내 몰수 있는 합법적 퇴로를 열어 준 것이다.
또한 "비정규노동자를 2년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한다."는 의무고용에 대한 조항도 비정규직법의 한계로 드러나고 있다. 처음 이 항목은 노동계에 의해 고용의제, 즉 "비정규근로자를 2년이상 고용하면 고용된 것으로 본다."로 명시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사용자측의 반발에 의하여 "고용의 의무를 진다."로 후퇴하였으며, 사측이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고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제제조항을 삽입했지만 이것은 최초 제시된 '고용의제'에 비해 상당히 입법취지가 훼손된 것으로 평가 된다. 참고로 고용의제의 경우에는 법률 해석에 이견이 있긴 하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 사용주에 대해 부당해고에 의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법의 적용범위를 300인 이상 사업장(100인이하 사업장은 2009년부터적용)에 국한함으로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법의 보호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사업주의 근로 지시를 받지 않는 용역근로자 즉, 골프장 도우미(캐디), 학습지 교사 등 특수근로자 등 대다수 비정규노동자를 보호대상에서 제외함으로서 사실상 절름발이 보호법이 되고 만 것이다.
이랜드 사태가 불합리한 비정규직법의 모순을 잘 드러내고 양대노총과 민노당 9월 국회에서 법 개정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고 있지만 법이 원래의 취지대로 제 모습을 갖출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사용주 측이 '노동시장과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들어 극렬 반발할 것이 분명하고, 자본의 지배를 받는 상당수 정치인들이 후원자들을 의식해 자신의 소신껏 표결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졸속입법된 법의 불합리한 조항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권에 대한 시민의 압력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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