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15 19:26
수정 : 2007.07.15 19:26
비정규직법 시행 첫날 6개월짜리 새계약 맺어
“고용승계 인정 않는다” 단서…“내년 무조건 용역”
전국고속도로 영업소 노동조합 김옥순(47) 위원장은 2003년부터 한국도로공사 판교요금소에서 수납원으로 일해왔다. 1년 단위 계약직이었다. 밤낮없이 고속도로를 이용한 차량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요금을 받는 업무고, 나이도 있어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해마다 계약을 맺었지만 암묵적으로 고용승계가 보장됐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요금소 수납원들은 식사 시간을 포함해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일한다. 잠시도 자리를 뜰 수 없어, 식사시간 전까지는 화장실에도 갈 수 없다.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사람 한명이 들어앉으면 꽉차는 비좁은 공간이 이들의 일터다. 명절이면 더 바빠 아예 쉴 생각도 하지 못하지만 지금은 일터마저 잃을지 걱정이다.
비정규직법 시행 첫날인 지난 7월1일 아침, 김씨를 포함한 2천여명의 도로공사 직영영업소 수납원들은 공사가 내민 새 고용계약서를 받았다. 올 12월31일까지만 유효한 계약이었다. “고용승계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도 또렷했다.
김씨는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취업예규가 바뀌어 공사 쪽에서 새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해 직원들이 모두 당황했다”고 전했다.
이날 도로공사 직영 52개 영업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해야 했다. 김씨는 “도로공사가 월 수당을 10여만원 올려줬지만 이것도 6개월만 적용돼 사실상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말했다. 아침 조회 때 공사 쪽으로부터 “2008년부터는 무조건 용역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241개 고속도로 영업소 가운데 189곳에서 일하는 4500여명은 이미 용역직으로 전환된 상태다. 용역으로 전환한 영업소는 영세한 업체가 운영해 임금이 깎였다. 지난 4월 단체협약을 맺은 도로공사 직영 영업소 노동자들은 160여만원으로 임금이 크게 올랐지만, 용역 직원들의 급여는 120여만원 수준에 그쳤다.
김씨는 “계약서에 고용승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공사가 해고의 부담을 용역업체에 떠넘기고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피해가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도로공사는 241개 영업소에 소장과 관리직원을 파견해 놓고, 실질적으로 수납원들의 업무를 지시하고 감독하고 있다. 용역으로의 전환은 고용과 임금만 따로 떼어내는 꼴이다.
김씨는 “우리가 무슨 요구를 하게 되면 용역업체와 도로공사가 서로 떠넘길 것이 분명하다”며 “힘없는 노동자들만 이중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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