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간 누적된 불신이 사태의 뿌리
경찰이 20일 이랜드 계열 노조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매장 2곳에 공권력을 투입, 강제 해산함에 따라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이랜드 노사간 갈등이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더욱이 경찰의 공권력 투입에 대해 이랜드 노조는 물론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강경 연대투쟁을 벌이기로 하는 등 반발하고 있어 이랜드 사태가 회사 내부 문제를 넘어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간 전면전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랜드 사태는 노사간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갈등과 이로 인해 한껏 팽배해진 불신에서 비롯됐다. 2004년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이랜드그룹에 인수된 뉴코아는 주5일 근무제와 임금인상 등을 둘러싸고 잦은 노사 갈등을 빚어왔다. 당시 사측은 주5일제 도입시 유급휴가일을 축소하고 토요 연장근로수당을 조정할 것을 제시한 반면 노조는 임금삭감이나 연월차 축소 등 근로조건의 변동이 없는 주5일제 실시를 요구하며 15일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뉴코아 노사의 갈등은 이랜드가 작년 4월 인수한 까르푸(현 홈에버)로도 이어졌다.까르푸 노조는 이같은 뉴코아의 노사 갈등 사례 때문에 이랜드의 인수에 따른 구조조정 가능성을 우려,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과다차입에 따른 점포 매각 가능성에 대해 해명을 촉구하는 등 사측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지난 2월에는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매각설과 전점포 현금PDA 설치에 따른 잉여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에 대해 이랜드-뉴코아 노조가 공동으로 반발, 일부 점포를 중심으로 천막농성을 벌이거나 현금PDA를 수거했으며, 사측도 노조를 상대로 영업방해금지 가처분 신청하는 등 정면으로 대응, 노사 갈등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와 함께 뉴코아 노조는 사측이 비정규직 계산원 350명을 용역직원으로 전환시키자 이에 반발, 지난달초부터 파업에 들어갔으며, 여기에 이랜드가 지난달 홈에버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무급제를 도입하고 근무 기간이 2년 이상인 비정규직 일부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자 노사 갈등은 그룹차원으로 본격 확대되기 시작했다. 노조는 회사측 방안에 대해 직무급제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돼도 급여체계 등에서 기존 정규직과 다른 대우를 받게 되는데다 2년 미만 비정규직 직원의 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 등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노조는 특히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홈에버와 뉴코아 등 이랜드 계열 유통 점포에서 비정규직 900여명이 해고됐다고 주장하며 지난달 30일부터 상암동 홈에버 매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여왔다. 여기에 사측이 직원 의사 등에 따라 계약 만료된 비정규 직원과 재계약을 안한 것이지 부당해고한 것이 아니라고 맞서자 노조는 지난 8일 전국 이랜드 계열 유통매장을 상대로 점거농성에 나서 홈에버와 뉴코아 매장 13곳의 영업이 하루동안 중단되는 등 이랜드 노사 갈등이 물리적 대치로까지 이어졌다. 영업중단 사태 이후 노사는 양측 대표급 교섭을 수차례 진행했으나 번번이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협상을 접었다. 지난 10일 노동부 중재안을 놓고 진행된 첫 대표급 협상은 3시간만에 결렬됐으며, 16일 11시간 동안의 밤샘협상도 성과 없이 끝났다. 법인별로 진행된 17일 3차 협상과 18-19일 마지막 교섭에서도 사측이 점거농성 해제를 조건으로 외주화 순차적 철회와 해고자 일부 복직 등의 교섭안을 내놓았으나 노조는 "구체적인 실행계획 없이는 농성을 풀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사측은 특히 3차 교섭후 노조가 농성을 풀지 않으면 공권력 투입 요청이나 직장폐쇄 등 특단의 자구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 데 이어 19일 마지막 교섭 결렬 직후에는 더이상 협상을 할 의사가 없다고 대화 중단을 선언했지만 노조가 기존 입장을 끝내 굽히지 않으면서 파국의 길로 발을 디뎠다. 이에 대해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18일 기자브리핑에서 공권력 투입을 시사한 데 이어 경찰도 다음날 이랜드 노사의 3차 교섭 결렬 직후 공권력 투입 방안 검토를 거쳐 결국 서울 서초구 뉴코아 강남점과 마포구 홈에버 월드컵몰점에 진압 부대를 투입해 노조원을 강제 해산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이랜드 노사간 갈등은 더욱 첨예해져 사태 해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동안 이랜드 노사간에 불신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데다 공권력 투입으로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랜드 사측은 19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3박4일간 마라톤 협상을 벌이며 사측으로서 상당부분 양보했음에도 노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구사항 수위를 높이며 말바꾸기를 일삼아 협상이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며 노조를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회사가 무조건 점거농성를 먼저 해제할 것을 요구하며 일방적으로 교섭종료를 선언했다"고 사측을 비난한 뒤 "구체적인 대안 없이는 농성을 해제할 수 없다"면서 강경 대응 입장을 천명한 상태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정부의 공권력 투입에 대해 전 조합원이 참가하는 연대투쟁에 돌입하는 한편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이랜드 상품불매운동을 강화키로 하는 등 이랜드 사태가 노사간 내부 싸움을 넘어 정부와 노동계 전체의 전면전으로 치닫을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한편 경총은 경찰의 이번 공권력 투입과 관련, "노사간 대화가 단절된 가운데 홈에버와 뉴코아 영업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데다 상인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법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인철 권수현 기자 aupf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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