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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2 08:59 수정 : 2007.08.22 14:35

IT 강국 개발인력들 ‘노예노동’ 신음

원청사 원가절감에 하청사들 ‘악소리’
“무급야근·휴일근무 언제면 끝날까요”
‘찍히면 끝장’ 불합리한 제안 거절못해

정보기술 개발자들이 자조적으로 말하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주 7일 근무체제는 끝이 없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닮았다.

“정말 이러다간 죽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트레스성 우울증을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도 이 일을 계속하는 한 나아질 수 없다고 그랬죠.” 불혹을 내다보는 ㄱ씨는 5년간 다녔던 휴대전화 관련 외주 개발회사를 마지막으로 지난해 이 ‘바닥’을 아주 떠났다. 하루 야근 4시간, 주당 평균 70여시간 근무, 그러나 그가 받은 보상은 4시간 야근 초과 때 나오는 식사비가 전부였다. “아내가 늦게 퇴근한 제 기분을 풀어 주려고 애교를 부리는데 저는 ‘저리 가,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은데 니가 옆에 있으면 울 수 없잖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도 울고 저도 울었어요.” 그는 여전히 ‘개발’이란 단어에 설렌다. 하지만 오래전 정보통신공학과에 대입 원서를 냈을 때의 꿈은 이제 하릴없는 ‘절망’으로 영원히 지운다.

정보기술(IT) 산업 종사자들이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른 기술인력 유출, 예비 취업자들의 회피 등이 초래할 ‘산업의 위기’까지 내다보고 있다.

2년 전 보험설계사로 직업을 바꾼 전직 개발자 박아무개(34)씨는 “살인적 노동 환경의 원인은 원청 발주사의 무리한 원가 절감 요구”라며 “정부가 책정한 기술수준별 공정임금을 적용하는 계약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러 개발사들은 고객사(원청기업)나 프로젝트를 수주·선도하는 대기업의 불합리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고 한다. 중소 개발업체 ㅅ사 사장은 “눈밖에 나면 재계약은커녕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일방적 기획과 납기 단축이 관례화된 배경이다. 한 개발자의 말마따나 ‘애초 하루 12시간 노동을 전제로 납기를 짠 프로젝트’는 갑(고객사)-을(IT 대기업)-병(중소 개발사)-정-무까지의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어져 밑단일수록 곱절의 노동을 떠안긴다.

“지난 3년간, 한 이동통신회사의 모바일 인터넷 구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석달짜리 프로젝트를 하루도 안 쉬고 4시간만 자며 했더니 겨우 테스트 일정에 맞출 수 있었는데, 갑자기 바뀐 ‘갑’의 담당자가 자기들이 확정했던 기획과 디자인을 다시 하자고 하더라. 그러곤 지옥 같은 일정이 다시 반복되었다.” 지난 5월, 박아무개(30)씨도 8년 동안 몸담았던 개발직을 미련 없이 버렸다.

노동 자체가 ‘덤’이다. 한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는 최근 ㅅ전자와 프로젝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파견 근무는 이미 계약 2개월 전부터 시작됐다. 원청 업체가 계약도 맺지 않고 기획 단계부터 하청업체 직원들을 부려먹는 이른바 ‘연계 수주’다. 이 회사 ㅊ(35)씨는 “그동안의 임금은 회사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벌이 없는 회사가 이틀 걸러 하루씩 해야 하는 야근을 보상해줄 리 없다.

“○○전자의 하청은 이 바닥의 막장이다.” “△△통신이 지나간 자리는 하청업체의 시체만 남는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21세기 속담’이다. 하지만 불공정 하도급 계약은 서비스 개발 등의 외주가 필요한 인터넷사업 부문에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한 개발자는 “2~3년 전 3억짜리 수준의 프로젝트가 이젠 2억짜리로 거래된다, ‘사장만 돈을 벌면 된다’는 식의 과잉 경쟁 때문에 노동 현실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직하게 그는 되뇌었다. “지난해 여름, 밤낮 혼자 있는 아내가 힘드니까 말도 없이 처가로 가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을엔 일주일 만에 집에 들어갔더니 아이가 낯을 가려요. 좀 보듬으려고 했더니 결국 웁니다. 이건 사는 게 아니지 않나요?”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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