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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진출한 한국 기업 필스전에서 일하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메를리 솔라노씨가 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필스전 본사인 ㈜일경에 전시된 옷들을 가리키며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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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노동자, 한국기업 노동탄압에 도움 요청차 방한했지만…
OECD 가이드라인 무용지물…“현지실태 조사부터” 지적 “국가 이미지를 위해 본사에 권고만 할 수 있을 뿐 구속력은 없습니다.” 3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찾은 필리핀인 노동자 두 명은 홍정우 노동부 국제협력국 사무관의 말에 고개를 떨궈야 했다. 필리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일하던 이들은 회사 쪽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다 급기야 한국 정부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지난달 31일 방한했다. ㈜일경의 필리핀 지사인 필스전 직원 메를리 솔라노(41·여)씨는 “필리핀 정부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아, 본사가 있는 한국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희망은 여지 없이 무너졌다. 1990년에 필리핀 가비테 수출자유지역에 티셔츠와 속옷을 만드는 공장을 설립한 필스전은 2004년 노조가 결성되자 단체협상과 대화를 거부했다. 지난해 9월에는 파업에 돌입한 노조 집행부를 해고했고, 지난달에는 농성장에서 여성 노동자 2명이 납치당해 고속도로 옆에 버려지기도 했다. 필리핀 현지 월마트 등에 의류를 납품하는 청원패션 공장은 노조가 설립되자 아예 폐업신고를 하고 문을 닫았다. 이 공장에서 해고된 플로리 아레바로(39·여)씨는 “17년 동안 연장 노동을 요구받으며 한달에 15만원을 받고 일했다”며 “인간답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파업을 했다”고 말했다.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는 “이들 기업은 노조가 합법적으로 결성됐다는 필리핀 노동부와 노동법원의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1년이 넘도록 단체협상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원패션은 한국에 있는 본사도 지난해 부도가 난 뒤 현지 노동자들과 연락이 끊겼다. 필리핀 노동자들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인 만큼 그 가이드라인을 지키리라 믿고 마지막 희망을 품고 방한길에 나선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1976년에 제정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투자 및 다국적기업에 관한 선언의 일부분으로, ‘체약국 영토 안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기업의 경우 본사 소재지 국가의 관련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들은 산업자원부도 찾았으나 투자정책팀 김태희 사무관도 “가이드라인은 권고만 할 수 있다”며 “한달 동안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어떤 조처를 할 지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민주연대의 최미경 사무국장은 “예전 1970~80년대 한국에서 있었던 노동탄압이 한국 기업에 의해 동남아시아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며 “정부가 세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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