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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18일째를 맞은 정장훈 전 테트라팩 노조위원장(사진 맨 왼쪽)과 이상진 화섬연맹 부위원장(바로 옆)이 14일 스위스 로잔 인근 퓌이에 있는 테트라팩 본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로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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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공원에 농성 텐트 설치..1주에 3번 본사 항의시위
"인간이 아니라 돈 만을 추구하는 이런 다국적 기업의 부도덕성과 비윤리성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 국제적으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웨덴 다국적 기업인 테트라팩(Tetra Pak)의 여주 공장에서 20년째 생산직 근로자로 일해오다 지난 3월 8일 회사의 공장폐쇄 통보와 함께 해고된 정장훈 전(前) 노조위원장은 14일 차분한 목소리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 산하 화학섬유연맹의 이상진 부위원장과 함께 무기한 단식투쟁 중이다. 지난 달 26일 스위스 로잔 인근 퓌이(Pully)에 자리잡은 테트라팩 본사 앞에서 단식투쟁 선포식을 가진 이래 이날까지 18일째이다.
8월 22일 원정투쟁단을 조직해 스웨덴을 찾은 데 이어 지난 달 9일 스위스로 넘어온 뒤 제네바에서 로잔을 오가며 일방적인 공장 폐쇄 철회와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며 본사측과 싸워오다가 10일부터 로잔으로 완전히 옮겨 왔다.
로잔시(市) 정부의 허가를 받아 본사에서 1㎞ 가량 떨어진 로잔의 밀라노 공원내에 농성 텐트를 쳤으며, 단식투쟁을 하는 2명을 비롯해 모두 7명의 테트라팩 해고 근로자들이 1주일에 3번 본사를 찾아가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단식투쟁 소식이 점차 알려지면서 일부 로잔 시민들은 테트라팩 해고 근로자들을 찾아와 빵과 음료수, 물 등을 놓고 가면서 격려를 해주고 있으며 사민당 로잔지부는 21일 연방 총선으로 바쁘면서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또한 일간지인 르 마탱과 '24시간'을 포함한 스위스 언론매체들도 이들의 단식투쟁 소식을 보도하기도 했다.
두 달 가까이 접어드는 원정투쟁 기간에 이들은 몇 차례에 걸쳐 테트라팩 경영진들과 면담을 가졌으나 회사측은 여주공장 폐쇄 결정은 이미 내려진 만큼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테트라팩의 스웨덴 룬드 공장에 이어 스위스 퓌이 본사에서 테트라팩 고위 책임자들을 면담했으나 기존 회사측의 일방적 입장을 재확인한 데 그치자 이들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스위스 NCP(연락사무소)에 여주공장 폐쇄 사건을 제소했다.
OECD는 고용과 노사관계, 환경 등에 관한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을 규정하고 각 회원국에 NCP를 두도록 한 뒤, 다국적 기업들이 그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준수하는지 여부를 감독하고 있다.
정장훈 전 위원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두 차례 면담에서 회사측은 기존의 입장을 또 다시 일방적으로 설명만 했을 뿐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스위스 NCP에 제소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스위스 NCP는 지난 3일 베른에서 테트라팩 본사의 생산 총괄담당 수석부사장 등과 정장훈 전 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중재 모임을 개최했다.
정 전 위원장은 "별다른 소득은 없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우리의 입장을 말할 수 있었다"면서 "우리는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는 한편 본사의 책임 있는 인사가 한국으로 와서 공장 재가동 여부를 포함한 모든 문제들을 근로자측과 열린 자세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아예 `끝장교섭'을 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회사측은 근로자측의 요구사항들을 문서로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고, 근로자측은 ▲전제조건 없는 열린 협상 ▲협상 재개시 회사는 공장폐쇄 절차를 중단하고 노조도 모든 쟁의행위를 중단한다. 다만 한국에서 끝장 교섭을 한다 ▲일방적 공장폐쇄로 사측에 귀책사유가 있는 만큼 해고 시점부터 임금을 지급한다 ▲공장 재가동시 해고된 근로자 22명의 재고용을 보장하고 대기 기간을 근속기간에 포함시킨다 등 4개항의 요구를 담은 문서를 보냈다.
이상진 연맹 부위원장은 "본사측은 우리에게 답장을 보내 책임 있는 인사를 한국에 파견해 교섭하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끝장교섭을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며 "사측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측이 진정 한국에서 공장을 철수하겠다는 것인지, 노조원들을 솎아내기 위해 위장폐업을 한 것인지 불투명하다"면서 "실제로 공장을 한국에서 철수할 생각이라면 사측이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장훈 전 위원장은 "공장의 부지와 기계들은 그대로 있고 관리자들도 여전히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트라팩 원정투쟁단은 이번 사안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했다. 산업자원부에서 맡고 있는 한국 NCP에 이 사안이 "OECD의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 위반"이라고 제소했으나 1차로 기각됐고, NCP측의 요구로 추가자료들을 제출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상진 부위원장은 "정부는 투자 유치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굉장히 소극적인 듯 하다"며 "정부가 `먹튀'를 하려는 다국적 기업에게는 혜택을 주고, 자국의 노동자들은 방치해 불이익을 준대서야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테트라팩은 세계적인 액상 식품포장 업체이며 최근에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 포장용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다.
아니카 젤름 테트라팩 대변인은 "우리 회사는 한국 공장의 45%에 달하는 수출 비즈니스를 다른 회사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면서 "한국내 공장 폐쇄 결정은 오로지 영업적 이유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고 일간지 `24시간'은 전했다.
젤름 대변인은 "우리는 근로자들에게 퇴직수당을 제공했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며 "96명의 근로자 가운데 74명은 그 같은 우리의 제안을 받아 들였으며 22명은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 유 특파원
lye@yna.co.kr (로잔 <스위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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