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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의 세상속으로] 이랜드·뉴코아 노조 파업 5개월
20명 구속·수백억대 가압류…마지막 남은 무기는 불매운동
대선판에 눈돌린 무관심속 400여명 아줌마들은 스러져간다


비정규직법이라는 원인을 제공한 노동부지만 결과에 대해선 무능·무책임부다.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내년 6월까지 지켜보자고 하면서 손을 놓았고, 정부는 수도권에 있는 그룹 매장마다 전경 1개 중대씩을 배치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끝낸 상태다. 결국 노조가 두 손 들고 항복하거나 싸움이 장기화되거나 둘 중 하나만 남았다.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노조가 지구전을 펴려면 투쟁 동력과 투쟁 기금이 필수적이다. 아직 남아 있는 400여명의 파업 동력 중 250 명은 간부 못지않은 투쟁 의지를 갖고 있다. 지난 11월20일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 강당에서 열린 총회에도 200여 명의 조합원이 빼곡히 들어찼다. 그 가운데는 차비가 없어서 집에서 걸어서 온 조합원도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이 약속한 투쟁기금은 9월치 이후로는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올해 말까지 생계비 지원금 16억원 가운데 지금까지 걷힌 돈은 25%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종강씨의 말처럼 용역깡패보다 민주노조를 더 미워하는 세상에서, 연맹별로 어려움에 처해 있지 않은 데가 없다. 민주노총의 지원 결정이 알려진 뒤 그나마 다른 데서 오던 투쟁지원금도 끊겼다. 파업 초기에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랜드그룹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민주노총 깃발을 내리겠다”고 했다. 민주노총과 이랜드그룹이라는 자본 하나와의 싸움, 이게 만만치 않다. 다른 파업에 비해 호의적인 여론의 파업인데도 그렇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할 만큼 했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어쩌면 이 정도가 한국 노동계의 진짜 실력인지 모른다. 누구의 말처럼 “목소리만 높고 깃발만 나부끼는….” 회사를 강하게 압박하는 매장 봉쇄는 지금까지 20명의 구속자, 일반 조합원까지 확대된 고소·고발, 수백억원대의 손배 가압류를 불러왔다. 추석 전과 달리 최근에는 시민사회의 관심이 대선에 집중되면서 폭넓은 연대 동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10월23일부터 마포구 광흥창역 앞 40m 높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탑에 올라 고공시위를 벌이던 박명수 조합원은 결국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고공농성장을 찾아와 이랜드 자본을 비난하면서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를 즉각 착수하겠다고 공언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에게선 그 뒤 소식이 없다. 이제 노조에게 남은 무기는 선전전과 일인시위로 불매운동을 펴는 것. 그러나 불매운동을 호소하는 일인시위자들과 눈이 마주치거나 선전전 문건을 받아들고도 매장을 향하던 발걸음을 되돌리는 시민은 찾기 어렵다. 쇼핑수레 가득 사 들고 나오는 시민을 볼 때 조합원들은 외롭고 흔들리고 쓰러진다. 수 년 전, 민주노총 활동가에게서 삼성에 무노조가 관철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프랑스의 ‘연대·단결·민주(SUD)’ 노조 활동가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한국 노동자들이 삼성 제품을 구매하는가?” 민주노총 활동가와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무노조를 고집하는 삼성 재벌과 이를 방조하는 공권력을 비난할 줄만 알았지 노동자 쪽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자들에겐 노동자의식이 부족하다. 잘 아는 얘기다. 일부 노동자들이 노동자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도 일상성이 확보되지 않은 ‘일시적이며 의식적인’ 노동자의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쟁 구호를 외치고 〈철의 노동자〉를 함께 부를 때 노동자성을 확인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거의 모두 소시민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한국 자본의 힘이 막강하다면 그 까닭은 먼저 노동자의식의 부족, 노동자간 연대의식의 부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인터뷰 중 김 위원장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명동성당 앞 농성 첫날인데 성당 신도들이 천막을 뜯어갔다는 내용이었다. 분회별로 토론을 벌이는 조합원들을 바라보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비정규 노동자들이, 저 아줌마 노동자들이 한 번쯤 이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단 한번 만이라도 말입니다. 우리 노조가 이긴다는 게 별 것도 아닙니다. 잃은 것을 회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 후원계좌 ‘신한은행 110-199-634510 박윤관’. 노조 이름의 계좌는 가압류당한 상태다.)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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