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19 20:27
수정 : 2008.06.1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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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에 누운 화물연대 = 화물연대 조합원 200여명이 16일 오전 광주 서구 광천동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서문 앞에서 공장 측이 비조합원들의 컨테이너 차량을 이용해 화물을 실어나르는 것을 경찰이 호송하는 데 항의하며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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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은 민주주의 인권 문제
뛰는 기름 값에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지 6일째다.
비조합원의 참여와 파업지지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화물연대 파업에 정부는 반노동 정서를 드러내며 허둥대고 있고 언론은 표준요율제와 화물운송노동자들의 노동권, 화주와 운송업체의 다단계 하도급등 근본문제 보다는 ‘물류대란’ ‘수출,입 차칠’ ‘산업피해, 눈덩이’ 따위의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화물연대는 빨갱이’라는 여수경찰서장의 발언은 이명박 정부의 시각을 여과 없이 드러낸 말로 보인다.
언론은 삼성전자 ‘광주공장, 대우일렉트로닉스의 가동중단’, ‘여수산업단지 휴켐스 가동중단’, ‘사료 수송 차질로 축산농가 피해’ 까지 들먹이며 화물연대 파업의 피해를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18일 ‘강원 수해주민 복구공사 지연에 불안감’ 이라는 기사에 “설상가상으로 화물연대에 이어 건설기계노조의 파업 강행으로 중장비 가동마저 차질이 생겨 공사가 지연되자 주민들은 더욱 불안에 떨고 있다.”며 인제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 “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6월 말 완공을 앞둔 소 교량이 대부분’이라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화물연대 파업과 함께 장마철이 시작되니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멘트를 집어넣는 기민함을 드러내며 ‘서민생활과 불편함’을 강조하려 애쓰기도 했다.
수조원대의 생산차질과 수출입 차질이 있다는데 거꾸로 묻고 싶다. 단 엿새 파업으로 그렇게 큰 피해가 날 일이었는데 그동안 정부는 뭐했는지? 언론은 뭐했는지부터 물을 일이다.
늘 상 노동자들의 파업이면 보도되던 수출차질이 엿새 파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한다. 그게 그렇게 큰일이라면 그 큰일을 하는 화물운송노동자 (아니 차주라 불러도 좋다)가 얼마나 우리 사회 소중한 사람들이였는지부터 되짚어야 하지 않을까? 7조원의 순익을 내는 삼성전자를 세울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했는가? 오르는 기름 값은 아랑곳없는 운송비, 다단계 하도급으로 중간착취, ‘표준요율제’ ‘노동기본권’ 요구에 대한 모르쇠로 소중한 사람들을 뿔나게 하지 않았는지부터 반성할 일이다.
‘소, 돼지, 닭이 굶지 않을까?’ 걱정하기에 앞서 ‘물류대란’이라 아우성치기에 앞서 우리 몸의 혈관 같은 물류를 책임지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삼성전자 같은 화주, 글로비스 같은 운송업체는 그동안 홀대하지 않았는지 또 정부는 어떻게 대했는지 반성부터 할 일이다. 7조 원대 순익을 내는 삼성전자는 화주로서 정당한 화물 운송비를 지급했는지부터 조사할 일이다.
어린 시절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웠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도 이 말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작 13,000여대의 운송거부로 경제 흐름이 멈췄다면 그들은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소중한 사람인거다. 우리 사회, 언론은 그렇게 소중하게 대했는가.
2,000년 ‘의약분업’에 반발한 의사들의 파업이 있었다. 파업에 대한 공감은커녕 적대감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의사들은 결코 ‘파업’을 접지 않았다. 아니 응급실 교수들까지 똘똘뭉쳐 자신들의 기득권을 '사수'했다. 그 때 ‘생명을 다루는 소중한 의사니, 소중히 대해 달라’거나, 의대 6년 인턴, 레지던트 과정의 어려움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며 의사가 되기 위한 투자?와 노력에 비해 결코 큰 밥그릇이 아니라고 강변했던 일이 생각난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나누고 선출하는 방식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존의 권리와 사회․정치적 권리를 보장받는 걸 뜻한다. 의사의 생존권과 화물운송․건설기계노동자들의 생존이 다르게 평가받는 사회를 민주사회라 할 수 있을까?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인간으로 최소한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생존의 평등’을 생각했으면 한다.
7.4% 지지율의 이명박 정부가 맞은 촛불과 화물연대 파업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다. 이 열망이 ‘소통과 생존’의 문제로 구체화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궁금해 하던 촛불의 배후가 드러나고 있는 거다. 위협받는 생존권이 촛불의 진정한 배후다. 촛불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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