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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02 20:17 수정 : 2008.07.02 22:42

비정규직법 시행 1년을 맞아 이랜드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비정규직 철폐와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중인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 앞 천막에서 1일 오전 한 노조원이 지쳐 잠들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비정규직법 시행 1년
법 비웃는 고용불안·차별

“고용불안·차별 시달려…법개정 전이라도 적용을”
노동계 “외주 규제” 경영계 “파견 확대” 시각차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1년 동안 효과를 제대로 못 내고 있어 법 개정이나 제도 보완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모두 그 필요성엔 공감한다. 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 차가 현격하다. 그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절박한’ 처지로 몰리고 있다. ‘사회 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 노동계 “외주화 규제” 노동계의 가장 큰 요구는 “편법적인 용역·도급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비정규직법이 용역·도급 같은 ‘간접 고용’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상시적인 주된 업무는 ‘직접 고용’ 원칙을 못박고, 외주화를 막자는 주장이다. 박수근 한양대 법대 교수는 “외주화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노동법 전체가 후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사내 하도급 노동자 보호 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노동계는 원청업체도 하청업체와 함께 이들의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분명한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을 쓰도록 하는 ‘사용 사유 제한’ 도입을 요구한다. 현행 법은 비정규직을 2년만 쓰도록 ‘기간 제한’ 규정만 둬서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것이 이유다.

비정규직법 개정을 보는 노·사·정 태도

■ 경영계 “비정규직 사용 기간 3년으로” 경영계 쪽 시각은 180도 다르다. 경영계는 기간제 노동자를 쓰는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노동자 파견도 32개 업무(197개 업종)로 한정한 것에서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접 고용이 불가피한 이상, 아예 파견·용역을 활성화하자는 얘기다.

정부는 경영계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3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영계 요구와 노동계 요구를 묶어 논의한 뒤 내년에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한을 조정하는 등의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해, 경영계 쪽에 기운 발언을 한 바 있다.


■ 법 개정 늦어질 듯…“사회 안전망 시급” 정부의 친기업 정책 기조에 기대어 법 개정 목소리를 높이던 경영계는 최근 ‘촛불’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최재황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는 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연 비정규직법 토론회에서 “지금은 성급히 법을 고치기보다 비정규직법 안착에 힘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쪽은 ‘전면 재개정’을 촉구하면서도 우선순위를 앞세우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의 국회 다수 장악 등에 비춰, 비정규직법이 되레 더 ‘개악’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금 국회를 통해 개정을 시도하면 결과가 뻔해, ‘비정규직법 폐기’가 주요 요구사항에서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법 개정을 서두르기보다는, 정규직 전환 장려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사정위원회도 곧 비정규직법 후속대책 위원회를 재가동할 예정이다.

문제는 비정규직법이 제 구실을 못하면서, 고용 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이 그때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다. 한 노동전문가는 “본격적인 법 개정 논의는 내년 봄 국회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지만,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는 산업재해보험 확대 적용 등 ‘사회 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차별시정제 확대 시작
중기 77% “대책 없어”

100~299인 사업장 이달부터 적용

사업체 규모별 비정규직 수

1일부터 차별시정 제도가 100~299인 사업장 8700곳 비정규직 노동자 39만6천여명에게도 적용돼 중소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비정규직법의 영향을 받게 됐다. 내년 7월부턴 5~99인 업체 49만3천여곳의 비정규직 339만여명에게 적용된다. 5인 미만 영세업체 89만7천여곳의 150만2천여명은 그나마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

그러나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300인 미만 업체 300곳을 설문조사해 보니 77.3%가 ‘법 시행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했다고 2일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최근 실태조사에서도 300인 미만 업체 181곳 가운데 61.7%가 ‘비정규직 차별시정 관련 인력운용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했다.

중소기업들은 인력 감축, 곧 해고가 힘들어진다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을 주저하고 있다. 직원이 239명인 대구 제조업체 ㄷ업체에는 사무 보조를 하는 계약직 노동자 7명이 있다. 이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 급여도 같지만, 정규직이 아니다. ㄷ업체 쪽은 “경영 여건이 어려울 때 인력 감축을 하기 어려워 정규직 전환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인호 중소기업중앙회 인력대책팀장은 “처우 개선보다, 경영 사정에 따라 인력을 조정할 수 없는 것이 부담”이라고 말했다.

대책을 세웠다는 업체들도 용역·도급업체에 업무를 맡기는 ‘외주화’(35.3%), 다른 기간제 노동자로 ‘교체 사용’(17.6%)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법 위반 위험도 무릅쓰겠다는 태도다.

일부 경영자들의 주장처럼 ‘비정규직법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유지한다는 중소기업은 각각 91.7%, 92.0%나 됐다.

중소기업들은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것 말고도, 차별시정 제도의 확대 적용을 유예할 것까지 정부에 요구한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박화진 노동부 차별개선과장은 “비정규직 사용 기간 제한 효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날 내년 7월엔 대량 해고 사태가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수치보다 고용의 질에 역점 둬야”

괜찮은 중소기업 육성하고
사회보장 서비스 확대해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 개정뿐 아니라 ‘좋은 일자리와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지난 1일 한국노총이 연 비정규직법 토론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보호’ 측면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에 따른 ‘고용의 질’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수출이 늘어도 내수가 확산되지 않고 고용이 늘어도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자가 줄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그는 진단한다. 따라서 경제활동인구의 절반 가량은 정규직이 되지 못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비임금 노동자(자영업자 등)-비경제활동인구(실업자)’ 사이를 오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 박사는 “고용-성장-복지 세 축이 연계된 새로운 전략으로 이런 악순환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 박사가 제시한 세 가지 중장기 전략은 이렇다. 고용 전략은 ‘괜찮은’ 일자리 창출이 목표여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따른 정규직 전환, 엄격한 차별시정 제도 시행, 고용 안정을 전제로 한 임금 유연화 전략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또 성장의 초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불공정 거래와 다단계 하청구조를 없애는 등 ‘괜찮은 중소기업’을 만드는 데 맞춰져야 한다. 복지는 고용된 노동자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4대 보험 등 ‘기업복지’에서 ‘사회보장’ 서비스로 확대해야 한다. 노동자가 내는 돈만큼 혜택을 주는 복지 시스템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은 박사는 “성장률이나 일자리 수가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건강한 노동시장 구조를 실현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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