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0.01 15:19 수정 : 2008.10.01 19:01

마산 대우백화점 식품관에서 계산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직원이 손님이 없는 사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현장] 대우백화점 계산대 직원 만나보니

‘거만해 보일까’ 우려도…손님들 “정말 잘한 일”
신세계 의자 배치…이마트·지에스도 도입 검토

"앉아서 틈틈이 쉴 수 있으니까 피곤하지 않아요. 손님에게 더 친절해집니다."

마산 대우백화점 지하 식품관 계산대에서 만난 강진희(26)씨의 얼굴이 밝다. 지난 20일 백화점 쪽이 식품관과 매장 곳곳에서 일하는 계산대 직원에게 휴식용 의자를 놓아주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꼬박 10시간씩 서서 일했고, 집에 갈 때쯤엔 늘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다.

유통매장 계산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훈훈한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만 했던 고된 작업환경이 이제는 앉아서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각 시민단체들이 지난 3월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를 놓아줄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한 지 6개월만의 일이다. 그동안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들은 "백화점의 판매직 노동자, 마트의 계산원 노동자, 고속도로 휴게소의 판매직 노동자 등이 하루종일 서서 일하기 때문에 하지 정맥류 등에 질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앉아서 일하는 매장 노동자 만나보니


대형 유통매장으로선 이례적으로 계산대 직원에게 의자를 놓아 화제가 되고 있는 마산 대우백화점을 25일 직접 찾았다. 지하의 식품관 매장은 약 60,000㎡로 큰 규모였다. 계산대 직원들에겐 실제로 높이 1m 정도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직원들이 늘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10초 이상 앉아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들은 손님이 없을 땐 잠시 앉아 있다가 손님이 다가오면 일어서서 응대했다. 앉아서 계산을 할 수는 없었다. 일단 계산대 높이가 앉아서 일을 하기엔 너무 높았고, 손님들이 가져온 짐을 직접 받으려면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손님이 없어도 의자에 앉지 않은 채 일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2년 가까이 대우백화점에서 근무한 김아무개(42)씨는 "습관이 돼 서서 있어도 좋아요. 의자에 앉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앉아 쉴 수 있게 된 근무 환경이 좋은 거죠"라고 말했다.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는 것은 김씨뿐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직원은 의자가 놓인 후 저마다 겪고 있는 변화를 설명하느라 신이 났다.

강씨는 "예전엔 퇴근하면 높은 베개에 발을 올려놓거나 발마사지를 하지 않으면 다리에 쥐가 나 잠을 못 잤다. 한데 이젠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다리가 아파 쪼그리고 앉아 몰래 다리를 주무르던 예전의 근무 환경을 잠시 떠올리던 강씨는 "회사에서 이렇게 배려해주니 업무 능률도 오르게 되는 것 같다"며 회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대형 할인마트에서 계산 업무를 하는 여성 노동자가 선 채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서비스 산업에서 판매 업무를 하는 여성 노동자들 대부분은 서서 일하고 있다. 전국 민간서비스산업 노동조합연맹 제공
하지만, 이 백화점에도 계산대 직원에게 의자를 놓는 것이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다. 배명호 대우백화점 홍보팀 차장은 "자칫 앉아서 일하는 것을 손님들이 거만하게 볼 수도 있어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며 "손님들의 반응이 계산대에 놓인 의자의 운명을 결정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손님들의 반응은 어떨까? 임성령(49·마산시 합포구 완월동)씨는 "(직원이 건방져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우려다. 오랫동안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놓는 배려를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한발 나아가 "다른 백화점에도 확대됐으면 좋겠다. 계산대 높이도 재조정해 직원들에게 일하기 좋도록 바꿔주면 더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성구(46·광양시 금호동)씨도 "손님 없을 때 쉬고 손님 맞을 때 서서 일한다면 건방지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고 거들었다. 의자에 앉아 일하는 직원들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손님들은 찾기 어려웠다.

같은 날 경남 사천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았다. 언론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곳은 지난 3월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 놓기' 캠페인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계산대 직원에게 의자를 놓은 곳이다. 매장은 복잡한 백화점보다 비교적 한산해 보였다. 이곳 직원들도 손님이 없을 때는 앉아 있다가 손님이 다가오면 일어나 인사한 후 물건값을 계산하는 모습은 백화점과 다르지 않았다. 송재옥 사천 휴게소 소장은 "민주노총의 캠페인에 공감했고, 직원들의 업무 피로도를 줄이려고 의자를 놓았다"며 설명했다.

대우백화점의 사례가 알려지자 계산대 직원에게 의자를 놓는 일이 전국의 유통매장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 취재 결과 마산 대우백화점 외에도 신세계 백화점이 8월 중 전국 매장의 계산대 직원들에게 의자를 놓았다고 밝혔다. 이어 대구백화점과 고속도로 신탄진 휴게소에서도 각각 지난 22일, 26일 계산대에 의자를 놓았다. 동아백화점은 마트 계산대에 의자를 놓을 예정이고, 지에스(GS) 리테일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형 유통점의 대표격인 이마트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마트는 10월 초 오픈 예정인 안성점에서 시범적으로 의자를 놓기로 결정했다. 이마트 홍보팀 이남곤 대리는 "안성점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해 본 결과를 토대로 전국 116개 영업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테스코에서 일하고 있는 계산대 직원의 모습. 계산대엔 의자가 놓여 있고 직원은 앉아 있다. <사진. 민주노총 서비스 연맹 제공>
하지만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 놓기' 캠페인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먼저, 계산대 직원들을 제외한 판매직 직원들에게 의자를 놓는 것에 대해선 회사 쪽이 대부분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배명호 대우백화점 홍보팀 차장은 "판매사원들에게까지 의자를 놓아주는 것은 아직 어렵다. 이들에게는 휴게실을 이용해 쉴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이 캠페인이 정착되려면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영섭 노동부 근로자건강보호과 과장은 "계산 노동자도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건강보호권이 있다는 국민의식이 확산하면 사업주들도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정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여성부장은 "26일 진행된 노-사 간담회에서 경총은 의자 놓는 것을 비용 문제로 접근하고 있었다"며 "사업주가 노동자들의 건강을 존중하는 의식을 확립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안전보건법 보건규칙 제 277조에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는 의자를 비치하도록' 규정해 두었다.

노동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해두고 있을까. 임 과장은 "10월 중 사업주 간담회를 열어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지급할 것을 홍보할 계획"이라며 "자금이 부족한 사업장에는 자금도 지원하고 2010년까지 구체적인 사업장 지침을 마련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허재현기자 cataluni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