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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화인켐 비정규 노동자들이 지난달 13일 노조 간부가 해고된 데 항의해 경기 평택시 포승공단 안 평택공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그 이틀 전엔 해고자들의 회사 출입을 요구하는 노조원과 용역 경비 직원들 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금속노조 동우화인켐 비정규직분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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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분회 만든지 5달만에 간부 11명 해고
노조 인정않고 탈퇴강요 ‘부당노동행위’ 일삼아
“언니들, 1장당 8.2초 안에 봐야 돼욧!” 불량품을 찾아내려 엘시디(LCD) 편광 필름을 보는 이효진(24)씨의 속도가 좀 느려지면, 초시계를 든 조장이 닦달했다. 화장실도 확인증을 받아야 다녀올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면 먼지가 날까봐, 기지개도 켜지 못했다. 400명이 크린룸 안 좁은 책상에 웅크려 앉아 12시간 내내 불량품을 찾았다. 목·어깨에 파스 붙이고 힘겹게 일해 한달에 쥐는 돈은 기본급 88만원. 잔업 60시간을 해도 110만원이 채 안 됐다. 동우화인켐 평택공장 비정규 노동자인 이씨는 이렇게 1년3개월을 일했다. 동우화인켐은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자회사로, 삼성전자 등에 납품해 연 1조5천억원 매출을 올린다. 평택공장엔 신우종합관리, 삼우공무, 씨씨엠텍 등 3개 사내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 1천명이 검품, 물류·포장, 청소 등의 일을 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함께 지난 5월 노조를 설립했다. 넉 달 만에 400여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7월엔 “크린룸에 가스가 누출됐다”며 원인 규명을 촉구하며 이틀 동안 작업을 거부했다. 이씨는 “올해 5~6차례 크린룸 안에서 눈물이 나고 속이 울렁거려 일할 수 없을 만큼 심한 가스 냄새가 퍼졌다”고 했다. 지난달 13일에도 비슷한 사고가 나자 노조 의뢰로 분석에 나선 원진노동환경연구소 쪽은 “직원들의 두통·구토 증상이 심각하고, 휘발성 유기화합물 농도가 가정집·학교보다 2~3배 높게 나타나 정확한 성분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우공무 강아무개 소장은 “외부 환경이 좋지 않아 냄새가 흘러들어온 것 뿐, 엘시디 필름을 닦는 에틸알코올 외에 화학약품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조의 목소리가 커지자, 회사는 지난달 15일 이씨 등 노조 간부 11명을 해고하고 2명은 정직, 1명은 감봉 처분을 했다. 이유는 “노조 활동을 핑계로 조퇴·연차를 많이 쓰는 등 근무 태도가 불량해서”라고 했다. 그 뒤 노조엔 70장이 넘는 노조 탈퇴서가 접수됐다. 지난달 31일 회사 앞 컨테이너 농성장에서 만난 최현기(32) 금속노조 동우화인켐 비정규직분회장은 “노조 와해를 우려해 조합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비조합원인데도 탈퇴서를 쓴 사람도 있더라”며 “회사가 탈퇴서 작성을 강요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달 30일 경인지방노동청 평택지청에 회사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다. 회사 쪽은 “조장들이 회사와 관계없이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또 회사는 “3개 사내 하청업체 공동 노조는 인정하기 어렵다”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노조 전임자 인정 등 중재안을 거부했다. “가스 누출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노동자들이 작업을 거부한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건 불법이고,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어 투쟁하다가 해고되면 기륭전자처럼 몇년씩 싸우는 걸 당연시하는 현실이 오히려 이상한거죠.” 동우화인켐 비정규 노동자들이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평택/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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