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2.30 13:06 수정 : 2008.12.30 13:06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이며 희망이다. 사진은 지난 6월 18일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단식 및 회사옥상 점거농성 중인 기륭전자분회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겨레

희망을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출근부에 이름을 올리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하루 일의 절반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던 시절. 입사할 될 때까지 비정규직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 내 자신이 비정규직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을 때도 '노동자'란 이름으로 희망이 자리잡던 시절. 운이 좋았던 것일까.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쫓겨날 일은 없었다. 늘 쫓겼던 것은 사장이었다. 결국 문을 닫고, 우리는 일자리를 잃었지만. 그런 일은 새 직장으로 옮겨갈 때마다 되풀이 되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 맞다. 적어도 노동자 탓은 하지 않았으니까. 약자의 순서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자르지는 않았으니까. 나에게는 가장 숨 가빴던 시간이었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청년노동자였다.

나쁜 소식들뿐이다. 시계바늘은 절망의 시간을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2008년,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이대로 접을 순 없다. 이 미완의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다. 마무리 짓지 못한 역사라면, 삶·정치의 '사고이월'을 뜻한다. 1년 농사가 흉작이다. 불량품을 떠안게 될 새해가 기쁠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몸부림은 올 한 해에도 절박했다. 그들의 이름을 다 불러줄 수는 없다. 2008년을 보내면서 이 세상에 몸뚱이 하나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사람들도 있지만 사업장에서, 길바닥에서, 후미진 뒷골목 선술집에서 숨죽인 채 고단한 하루를 이어간 이들이 더 많다. 이들도 우리에겐 소중한 이웃이다. 묵묵히 일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다.

꼭 기억할 이들이 있다. 노동자의 현실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세상에 드러내 우리 사회의 질곡을 투쟁으로 헤쳐 간 사람들, 바로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다.

지난 해 6월, 하루 종일 서서 일한 노동력의 대가로 한 달에 고작 80만원을 받다가 비정규직법의 시행을 앞두고 800여명이 거리로 쫓겨나면서 끈질긴 복직투쟁을 전개하다가 180여일 만에 '절반의 승리'를 거둔 이랜드노조 조합원들.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에 맞서 76명 전원이 로비점거, 천막·고공·단식농성, 삭발투쟁, 1천회 이상 집회 등을 개최하며 475일 째 파업투쟁을 벌인 끝에 직접고용을 쟁취한 코스콤 증권노조 비정규지부 노동자들. 2008년을 감동으로 물들인 값진 승리였다.

그리고 파견노동자로 일하면서 이중, 삼중의 노동차별을 받다가 삶의 벼랑으로 쫓겨나 1200일이 넘도록 정규직화 쟁취, 노조탄압 중단, 위장도급 철회를 요구하며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전국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여성노동자들. 2006년 3월 한국철도공사의 외주화 반대와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파업투쟁에 돌입했다가 승무원 280명이 쫓겨나면서 1035일 째 정리해고 철회와 직접고용 쟁취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KTX 승무지부 비정규직 노동자들. 다 기억할 수 없다. 이들 말고도 더 있다. 싸움의 시간도 너무 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사법당국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을 무시했다. 오히려 업무방해와 폭력행위 혐의를 씌워 노조간부와 활동가들을 구속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경찰은 공권력을 휘두르며 부지런히 농성장에 난입하여 노동자들을 강제로 해산하고 미친듯이 연행했다. 정규직과 용역 깡패를 동원해 노조원을 감시하고 협박하고 분열을 부추기는 사업장도 있었다. 이들 모두 듬직한 구사대들이었다.

노동자 1600만명, 그들은 한국경제의 동력이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 주체로 대접받지 못하고 언제나 자본의 노예로 끌려 다니고 있다. 노동력을 판만큼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노동자들은 IMF 외환위기 때도 그랬지만 미국발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가 불황의 덫에 빠지면서 감원과 대량해고 사태에 알몸으로 노출돼 있다. 그 중심에 860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이들 가운데 440만명이 한달 월급 100만원 이하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명박 정부는 이 땅의 노동자를 고통과 희생의 칠성판에 내팽개쳤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면서 노동계급을 철저히 배제하는 대통령 스스로도 대놓고 친기업주의자라고 자랑해왔다. 그런 사고 자체도 당돌하기 짝이 없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한 재벌방송법(7대 언론악법), 재벌은행법(금산분리 완화 및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관련법) 등 'MB악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친기업도 아니고 대책 없는 친재벌옹호론자이다. 노동정책이 온전할 리 없다.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노동부가 딴짓 하는 것을 보면 그 집구석의 행실을 알 수 있다. 그 집구석은 자본권력의 사수가 먼저다. 노동자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면 홍위대장처럼 회초리를 먼저 들고 설친다. 쏟아내는 정책이 아찔하다. 38년 전 청년노동자 전태일 분신 소식을 듣고 맨 먼저 달려갔다는 그 서울대 법대생 이영희가 수장으로 있는 노동부가 백정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1000일을 훌쩍 넘겼지만 KTX 승무지부 여성노동자들은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참세상

노동부의 정책들은 한마디로 친기업전선 구축을 위한 것이다. 우선, 노동부는 비정규직 사용제한 기간을 2년에서 4년 연장하겠다고 한다. 비정규직 사용이 자유로워야 일자리가 늘고 실업자가 줄어든다는 구실이다.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그렇게 되면 당장 정규직의 일자리까지 비정규직으로 대체될 것이다. 3~4년의 사용기간 동안 기업의 고용사정이 나빠지면 또 어떻게 될까. 기업은 비정규직부터 줄일 것이다. 경기가 회복하여 사정이 좋아져도 비정규직으로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 비정규직 신분은 더 불안해지고 정규직의 꿈은 점점 멀어진다.

비정규직 파견 허용업종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도 노동자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반노동정책이다. 파견노동은 파견노동자에 대한 원청업체(사용사업주)의 사용자 책임을 은폐하는 구조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파견사업주)와의 계약관계를 해지하거나 파견노동자의 교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해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비켜갈 수 있고, 파견사업체 간 경쟁관계를 이용해 비용을 절감하면서 저임금 문제를 하청업체에 떠넘길 수 있고, 파견노동자의 노동3권을 짓밟더라도 이에 대한 법적 다툼을 비켜갈 수 있다. 이런 간접고용은 비정규직에 대한 고도의 노동착취구조다. 노동부는 외주화로 시작된 KTX·새마을호 승무원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의 아픔을 벌써 잊었는가.

노동부는 또 정규직 노동자를 마음대로 자를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고쳐 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한다. 해고를 쉽게 하면 정규직 채용이 늘어날 거라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없다. 실제로는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 불과한 비정규직을 더 늘리겠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럴 경우 고용불안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그대로 미친다.

비정규직법 개악으로 비정규직을 늘리고,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비정규직 양산을 막겠다? 그 말대로라면 정부정책 자체가 '모순'이다. 그래도 막무가내다.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해서 새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 돈을 적게 주면서 일은 더 많이 시키고 여의치 않으면 내쫓아 버린다는 것, 노동부와 재계의 일치된 관심사다. 게다가 기업의 인건비 절감을 걱정하며 취약노동계층의 생계비를 받쳐주는 최저임금마저 깎으려는 노동부다. 언제부터 노동부가 재계의 이익을 앞세우며 이렇게 뻔뻔해졌는지 모르겠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따져 보자. 제조업의 인건비 비중(9.8%)이 197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한겨레 김유선 칼럼, 9월 29일) 그런데도 기업의 경쟁력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무엇을 뜻할까. 기업이 '인건비 절감'을 내세워 단기수익 극대화를 꾀할수록 기업의 미래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부의 처방전은 급한 독감환자에게만 쓸모가 있다. 인건비 절감으로 불치병에 가까운 중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노동부가 늦어도 내년 2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법안 상정을 추진하는 근로기준법과 비정규직보호법 개악은 그래서 용납할 수 없다. 법과 제도로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고 대등한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는 일, 그게 노동부가 할 일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울수록 노동자와 서민의 회생을 돌보는 것이 난국을 타개하는 지름길이다. 세계 각국은 그렇게 하고 있다. 경제를 살린다는 빌미로 저임금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파업을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해 고강도 탄압을 일삼는 우리 정부의 모습과는 아주 딴판이다. 부유층과 투기꾼들을 업고 다닌다고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궤도를 이탈한 공중부양 열차를 운행하며 시대를 역주행하고 있다. 곤두박질 칠 날이 멀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늘이다. 우리 시대의 차별과 고통의 원인이며, 장시간 저임금 무권리 노동의 상징이다. 비정규직 860만명. 10년 전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혹독한 외환위기로 수천 개의 기업들이 도산하고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실직하는 과정에서 우리 노동시장의 빈자리를 메운 고통의 숫자다. 하지만, 비정규직 860만명은 희망의 숫자이기도 하다.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지렛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열쇠도 그들이 쥐고 있다.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 해소 등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고 노동시장의 안정화를 기대할 수 없다. 노동시장이 안정화되지 않으면 생산현장은 희망의 공장이 아니라 절망의 공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업은 허덕이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비정규직에 비해 임금이 높은 정규직 노동자가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런 정규직 노동자의 막다른 골목은 결국 비정규직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남용·차별 해소 문제, 더 나아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노동자 모두가 '희망'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벌써, 한해가 저물었다. 뒤돌아보면 회한이 짙다. 이명박 정권과 뉴라이트 집단으로부터 숱한 정치적·제도적 테러를 당해도 진보진영은 속수무책이었다. 제도정치세력인 민주당·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는 국민들이 먼저 접었다. 민중연대 전선에도 금이 많이 갔다. 민주노동운동 진영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그만큼 장기투쟁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누구를 탓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다시, 시작할 수밖에.

나는 소망한다. 모든 억압과 구속, 차별을 뚫고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리는 우리 노동자들의 마음속에 새해의 햇살이 가득하기를. 그리고 장기투쟁사업장에서 1년이 넘게, 2년이 넘게, 3년이 넘게 물러서지 않고 잘 싸워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09년에는 모두 승리하여 가슴 설레는 일터로 돌아가 진짜노동자로서 일과 꿈을 성취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