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4 20:47
수정 : 2009.05.0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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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 광주지사가 지난 3월16일 택배기사들에게 “금일 18시 이전까지…미복귀자는 자동 계약 해지됨을 최종 통보합니다”라고 알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화물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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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료 30원 인상 요구했다 ‘문자’로 해고통지
복직투쟁 박종태씨 자살…열악한 처우 드러나
“숨진 지회장도 ‘보따리 장수’라 불리는 지입 화물차주여서 택배기사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어요. 택배 배달료 30원 올려 달라는 요구였는데….”
대한통운에서 계약 해지된 택배기사들의 ‘복직’을 요구해 오던 박종태(38)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호희 운수노조 정책실장은 “택배기사들은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한 채 일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는 현행 법에선 회사와 배달 계약을 맺은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산재보험 등 4대 보험 적용, 각종 고용보호제도 혜택 등은 누리지 못한다. 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오전에 분류 작업을 하고 밤 9시까지 물건을 배달한다. 고두찬(40)씨는 “한 달 250만원 수입 가운데 차량 유지비·기름값·휴대전화 요금을 빼면 남는 돈은 150만~200만원뿐”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건당 2500~3000원 내는 택배료가 지사·영업소를 거치면서 택배기사에게 남는 몫이 줄기 때문이다.
이번에 택배기사들이 대한통운 광주지사에 요구한 내용은 자신들에게 남는 몫인 건당 920원을 950원으로 30원 올려 달라는 것이었다. 두 쪽은 지난 1월 이에 합의했지만, 대한통운 쪽은 3월15일 전국적으로 수수료 40원이 인하됐다며 합의 파기를 통보했다. 화물연대 대한통운분회 조합원들은 이튿날 계약서에 없는 분류 작업을 거부했고, 회사는 78명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사진)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박 지회장은 자신이 이끌던 제1지회 산하 ‘대한통운분회’의 계약 해지된 분회원들과 함께 대한통운 물류 집결지인 대전지사 앞에서 재계약을 촉구하는 집회를 여는 등 복직 투쟁에 앞장섰다. 그는 서울 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박 지회장은 지난달 30일 한 정당 게시판에 “투쟁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면 바쳐야지요”라는 글을 남긴 뒤, 3일 대전지사 인근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박 지회장의 아내는 해당 게시판에 “너무 힘들어서 잠시 어딘가에서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 … 제발 연락줘. 기다릴게”라는 글을 남겨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4일 광주 송암동 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택배 노동자 복직 △화물연대 노조 탄압 중지 등이 관철될 때까지 장례식을 미루겠다고 밝혔다. 5·18민중항쟁 29돌 행사 때까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규모 규탄 집회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광주/정대하, 남종영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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