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한국노총-구악과의 동거
(하) 전문가 제언- 버려야 산다 “노동자를 위해 희생해야 할 조합 간부가 ‘취업’을 미끼로 돈을 갈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이들은 이제 노동자가 아니다!”(진상규명) “(비리 조합 간부들은) 악덕 자본가보다 더 나쁜 내부의 적이 아닌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배신감은 ….”(논평가) “단 한 X도 빠짐없이 몽땅 처단하라!”(레인맨)
조합원 4만2천여명으로 국내 최대인 현대자동차 노조의 사이트엔 요즘 ‘노조 간부들의 비리’에 대한 성토와 분노, 자성을 토로하는 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간간이 보이는 “비리 간부들은 제발 자수해 달라”는 글들엔 노조원들의 절박한 위기감이 녹아 있다. 노조 밖 사회 여론은 더욱 싸늘하다. 지난해 기아자동차 노조의 조직적 ‘채용장사’에 이어 터진 현대차 비리가 결코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판과 불신은 현대·기아차 노조에만 그치지 않고 이들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을 향하고 있다. 민주노총이나 현대차 노조 일부 관계자들은 “한국노총도 있는데 …”라거나 “정부와 검찰의 노동계 길들이기”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신뢰 추락’의 ‘낙차’는 한국노총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왜, 어떻게,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물인 민주노총이 이처럼 ‘부도덕성’의 ‘부메랑’을 맞고 있을까?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시작으로 90년대 초반까지 투쟁을 통해 커온 노조들이 그 이후 자본 쪽의 회유와 매수 앞에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사용자들의 노무관리가 ‘병영식 관리’에서 ‘회유’와 ‘매수’로 바뀐 것과 관련이 깊다. “대기업노조 권력 재분배해야” 이수봉 민주노총 대변인은 “입을 떼기 부끄럽지만, 비리의 문을 열어젖힌 대기업 사용자들을 떼어 놓고 노조만의 문제로 지금의 사태를 진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속산업연맹의 한 간부는 “한 대기업의 경우, 새로 당선된 노조위원장에게 현금이 가득 든 ‘007 가방’을 건네려 한 일도 있었다”며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런 사쪽의 행태들을 그냥 넘긴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대기업 노조의 조직력과 운영이 안정되면서 사쪽의 회유와 유혹은 중간 간부들과 대의원들로 확대되고 구조화했다. 반면, 이를 제어할 노조의 수단과 도덕 재무장은 후퇴를 거듭했다. 실제 기아차 노조의 한 간부는 “노무팀은 현장 대의원과 활동가들에 대해 ‘양주·맥주·소주’로 등급을 매기고, 취미와 인맥, 성격 등까지 꼼꼼히 파악한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회사에서 14년째 일하는 ㄱ아무개(40)씨는 “노조 대의원들이 노무팀과 독대해 술이라도 한잔하면 ‘아 내가 이렇게 대접받고 있구나’하고 우쭐해진다”며 “그러다가 결국 회사가 던져주는 ‘채용 청탁’의 ‘미끼’까지 덥석 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노조활동가는 이를 ‘착시현상’이라고 불렀다. 어제까지 고압적이던 사용자 쪽이 갑자기 자신 앞에서 몸을 낮추자, 자신이 마치 사용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리의 구조적 발단이 어디에 있든, ‘어두운 비리의 그늘’로 스스로 들어가는 주인공은 역시 노조 활동가들이다. 이에 대해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조가 권력화, 관료화하면서 비리에 연루된 측면이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는 “비리를 낱낱이 밝히고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까지 검찰수사에 앞서 먼저 내부의 비리를 파헤쳐 드러내려는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노동연구원 임상훈 박사(노사관계학)는 “기업 단위 노조로는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며 “지도부가 건강할지라도, 단위 노조 차원의 비리 등에 대한 정보나 통제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거대한 개별 대기업 노조들에 집중된 노동계 내부의 권력을 재분배하지 않고선, 개별기업 단위 노조의 부패와 비리를 구조적으로 차단할 방법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흩어져 있는 양떼’보다 ‘우리 안의 양떼’를 감시·감독하기가 쉬운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양상우 정대하 기자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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