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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2 19:49 수정 : 2005.05.22 19:49


거듭나야할 노조
(중)한국노총-구악과의 동거

“진작 노동계에서 떠나야 할 사람들이 아직도 노조 지도자라고 남아서….”

조합복지기금 비리 혐의로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난 8일 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말에선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곤혹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노동계 인사들 가운데서도 “권 총장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국노총에 만연한 ‘비리’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노총의 2인자이자 ‘보수파’의 수장이었던 권 총장은 이번 사건에 앞서 이미 집행유예 중인 범법자였다. 부산시택시노조 위원장 시절의 비리로 지난 2001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을 받았다. 이런 이력에도, 그는 지난해 한국노총 선거에서 주저없이 ‘위원장 후보’로 나섰고, 후보단일화 협상을 통해 ‘사무총장’에 올랐다.

선출직 간부 ‘20년 이상’ 수두룩
장기집권, 노동귀족화·부패 불러
잇단 비리 터져도 ‘간선제’ 고수

공인된 ‘비리 사범’이었던 권 총장의 입신은 무얼 뜻하는 걸까.

한국노총 한 채용직 간부는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개혁’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한국노총에는 ‘장기집권’을 통한 ‘노동귀족’ 역사의 뿌리가 너무도 깊다”고 말했다.

권 총장만 하더라도 오랜 기간 부산시택시노조 위원장을 지낸 뒤 전국택시노련 위원장을 3차례나 연임한 ‘통제받지 않는 권력자’였다. ‘항운노조 비리’로 구속된 오문환 전 위원장은, 측근으로 함께 구속된 박이소 전 위원장에게 노조위원장 자리를 넘길 때까지 14년 동안 부산항운노조와 전국항운노조 위원장을 차례로 지냈다. 그 뒤에도 그는 ‘상임지도위원’으로 부산항운노조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드러난 예’에 불과하다는 게 노동계의 일반적 우려다. 노동귀족과 부패의 텃밭 구실을 하는 한국노총 내 장기집권 경향이 상식의 선을 넘어서고 있는 탓이다.

최근의 한 연구자료를 보면, 한국노총 선출직 간부 가운데 ‘3선’은 18.1%, ‘4선 이상’이 24.1%나 차지하고 있다. 재직 기간으로도 ‘9년 이상’이 무려 41.4%에 이른다. 단위노조 위원장으로 6선, 산별연맹위원장으로 4선을 한 ㄱ씨는 35년 동안 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한국노총 안에선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년 이상 ‘초장기 재임’을 하는 선출직 간부도 즐비한 탓이다.

이른바 한국노총 내 ‘개혁파’의 한 인사는 “한국노총에는 아직도 노조를 입신과 부귀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조합 간부들이 많지만, 그들 지지 없이는 위원장으로 당선될 수도, 일을 해 나갈 수도 없다”며 “권 총장을 사무총장에 앉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이 위원장 등 이른바 노총 내 개혁파가 ‘민주적 조합 운영’을 위해 줄곧 ‘직선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보수파들의 반대에 막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잇단 비리사건이 터진 뒤에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한 단위노조 위원장은 “지금처럼 대의원 몇 명만 회유하면 위원장에 당선되는 간선제 구조와 그를 통해 장기집권하고 있는 구악 노동운동가들이 있는 한 어떤 대책도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거듭나기의 성패는 결국 ‘인적 청산’에 달려 있는 셈이다. 또 그 길은 지난 반세기 한국노총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하다. 양상우 이형섭 최상원 기자 ysw@hani.co.kr


한국노총 ‘태생적 한계’?

잇따른 한국노총 비리의 연원을 권력과 자본에 의존적인 한국노총의 ‘태생’과 관련짓는 이들도 적지 않다. 1954년 출범 당시부터 오랜 기간 정치권력의 엄호를 받으며 성장해오며 생긴 ‘비리’와 ‘도덕 불감증’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권력에 기대온 역사
“오랜기간 면죄부 받아와”

한국노총은 출범 초기,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서울 소공동의 적산 가옥(일본인으로부터 몰수한 집)을 불하받아 재정의 밑천으로 삼았다. 또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엔 정권으로부터 각종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안주해 왔다는 게 노동계의 일반적 평가다.

한 노동전문가는 “재정적 지원이나 떡값은 그 자체로 이권”이라며 “조합 운영이 민주적이지 않을 경우, 이권에 눈먼 조합 간부들의 부패와 타락은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수사중인 여의도 근로자복지센터 건축 관련 뒷돈(리베이트) 의혹도 건축비 516억원 가운데 64.7%인 334억원을 정부 지원으로 충당하며 생겨난 이권이 발단이었다.

실제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한국노총은 2001년 정부로부터 35억1200만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민주노총이 그해 받은 3억7800만원의 열배에 이르는 액수다.

여기에 ‘투쟁’ 위주의 노선을 유지해 온 민주노총에 견줘, 한국노총은 ‘교섭’과 ‘정책 공조’ 위주의 노선으로 사용자나 정치권과 상대적으로 가깝게 지냈다. 이를 통해 정치권력으로부터 오랜 기간 ‘비리의 면죄부’를 받아 왔다는 게 안팎의 지적이다.

이를 두고 한 노동계 인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말을 잘 듣는’ 한국노총 간부들에 대한 비리 수사는 성역이었다”며 “택시노조나 해운항만노조 비리 수사를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노총의 한 인사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위원장들이 촌지를 받았던 행태는 물론 잘못이지만,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은 오히려 더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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