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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근로 참가자들이 16일 오후 경기 시흥시 정왕동 그린테마동산 조성사업현장에서 화단을 가꾸고 있다. 시흥/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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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일자리 대책] MB 고용정책 긴급점검 ①
‘고용없는 성장’ 시대의 도래와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고용위기가 본격화하자,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잇따라 일자리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시장의 수요와 중장기적인 고용효과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정책의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겨레>는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인 일자리 대책의 허와 실을 모두 4차례에 걸쳐 점검한다.
희망근로자 오아무개(70·여)씨는 전주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가지·호박을 따고 하루 3만6000원씩 월 80여만원을 번다. 월 20만원씩 받던 노인 일자리 사업에서 옮겨왔다. 6일부터는 날이 더워 반나절 5시간만 ‘바짝’ 일한다. 돈은 8시간 일한 셈 쳐준다. 오씨는 “온종일 일하고 3만원 받는 인근 비닐하우스 인부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고 전했다. 희망근로 탓에 농촌 일손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일 서울 한 주민센터. 희망근로자와 공공근로자 10여명이 뒤섞여 빗자루를 들고 센터 내부 청소에 나섰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서다. 어차피 햇볕이 쨍쨍한 평소에도 쓰레기 줍기나 풀 뽑기 등을 나눠서 하므로, 희망근로와 공공근로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공공근로자 이아무개(43)씨는 “희망근로자 중엔 집 있는 사람도 많다던데, 공공근로라서 지난달 임금을 5만원 더 적게 받았다”며 “손해 본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부 “25만명 고용” 강조에도 6개월짜리 ‘머릿수 채우기’
1조7천억 쏟고도 효과 반감 20일로 시행 50일째를 맞은 희망근로 프로젝트가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1조707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일자리 대책임에도, 시행과정 곳곳에 허점이 보인다. 정부는 희망근로를 통해 △25만개 일자리 창출 △저소득층 생계소득 지원 △임금의 30%로 지급되는 상품권을 통한 지역 영세상권 살리기란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단 일자리 창출에선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고용지표가 나아졌고, 희망근로자 대다수는 “6개월짜리 일자리나마 어디냐”며 감지덕지하는 분위기다. 60대 여성 가장 ㅇ씨는 “나이가 많아 취업도 어렵고 은행에 담보로 잡힌 집이 있다는 이유로 공공근로도 못 했는데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용유지는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안 해도 그만인 ‘시간 때우기’식 일자리가 많은 것도 문제다. 정아무개(73·전북 진안)씨는 5월 말 면사무소로부터 “사람이 모자란다”는 전화를 받고, 희망근로에 급히 투입됐다. 함께 일하는 60~80대 노인들은 새벽과 저녁엔 농사짓고 낮엔 쓰레기를 줍는 식으로 ‘두 탕’을 뛴다. 그야말로 “노인들 용돈벌이용” 일자리인 셈이다. 5시간만 일하면 3만6천원
기준도 느슨 ‘눈먼 돈’ 전락
농촌 일손 위화감 조성도 인원부터 채우느라 선발 기준이 느슨해지는 바람에, 저소득층 생계 지원에 쓰여야 할 예산이 ‘눈먼 돈’으로 새어나가기도 했다. 가구당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이면서 재산이 1억3500만원(대도시) 또는 8500만원(중소도시) 이하인 신청자를 우선 선발하도록 한 기준은, 몇몇 지역에선 흐지부지됐다. 2억원가량 되는 집을 소유한 희망근로자 최아무개(62·서울 종로)씨는 “신청자가 적어 재산은 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울산의 최아무개씨는 “대기업 회사원 부인들이 희망근로 띠를 두르고 아파트 앞 노점을 단속하더라”며 “어떻게 이런 사람들까지 희망근로를 시키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금 일부로 지급된 상품권을 쓸 곳이 마땅치 않고, 대기업 점포까지 가맹점으로 포함되는 등 ‘지역 영세상권 활성화’란 취지도 빛이 바랬다. 행정안전부 쪽은 “일부 문제가 있긴 해도 신청자가 35만명으로 목표 인원을 웃도는 등 순조롭게 사업이 진행중”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희망근로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는 한 전문가는 “정부가 경기침체 상황에서 뭔가 하고 있다는 생색을 내려고 기존 공공근로 사업과 비슷한 사업에 ‘희망근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뿐”이라며 “애초 한계가 많은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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