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24 16:45
수정 : 2009.07.25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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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쏜 전기총에 맞은 쌍용차 노조원의 얼굴 사진. 제공.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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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봉지 쉴 새 없이 펑펑…다들 눈 시뻘개
물 가스에 음식마저 끊겨 겨우 주먹밥 한입
[현장] 쌍용자동차 농성 현장 잠입 취재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의 평택 공장 점거농성이 24일로 64일 째를 맞았다. 한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노동자들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경찰은 조금씩 노조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도장공장 앞까지 전진해 이제 경찰과 노조원들 사이 대치 거리는 50m 앞까지 좁혀졌다. 가까운만큼 대치상황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22일엔 화염병까지 등장해 경찰과 노조원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살갗이 타고, 진전없는 협상에 속까지 타들어가고 있는 쌍용차 노조원들을 24일 농성 현장인 도장공장에 들어가 직접 만나보았다.
컨테이너 잇대 바리케이드…밤낮 없이 교대로 보초
공장에 들어서자 눈부터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하루 종일 뿌려댄 최루가스가 곳곳을 둥둥 떠다니며 맵게 만들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씩 매운 기운이 사라졌다.
“다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어요. 보안경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취재진을 인도하던 한 30대 조합원이 말했다. 실제로 그래 보였다. 최루성분의 분진이 떠다니는 현장에 1시간 이상 머무르려면 보안경은 필수였다. 시간이 지나자 눈과 코밑 등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최루 분진이 피부에 들러붙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이렇게 노조원들의 몸은 먼저 최루가스 가루에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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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쪽 용역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경찰이 확보한 TRE동 옥상에서 노조원들을 향해 새총을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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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소리만 없지 바로 전쟁터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전시상황을 닮았다. 차체와 판넬 등을 쌓아 만든 3m 높이의 바리케이트들이 세워져 있고 노조원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전략적으로 좀 더 중요해보이는 곳에는 컨테이너를 대어 바리케이드를 세웠다.
이날 새벽 프레스 공장 쪽 바리케이트 위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우아무개(37)씨는 “언제 회사 쪽 용역들(노조원들은 회사 직원들을 용역으로 부르고 있다)과 경찰이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3시간씩 교대로 보초를 서고 있다”고 말했다. 잠을 못 잔 탓인지 우씨의 눈꺼풀은 반쯤 내려앉아 있었다.
경찰이 확보한 TRE 동 위에서 마스크하고 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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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일 째 점거농성을 하고있는 쌍용차 노조원들이 먹고 있는 유일한 음식은 주먹밥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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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선 노조원들이 새총 등을 이용해 경찰 등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이것은 절반의 사실일 뿐이다. 실제 공장 안으로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이 노조원들에게 끊임없이 새총 공격을 퍼붓고 있다. ‘툭.탁.펑.’ 공장 곳곳에서 들리는 소리다. 어두운 밤에는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선가 날아온 볼트와 너트 조각들이 땅바닥에 뒹군다. 아찔하다. 노조원들은 “회사 쪽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부인한다. 쌍용자동차 홍보팀 관계자 곽아무개씨는 “용역 직원 100 여명이 경비를 서기 위해 고용돼 있지만 노조원들을 향해 폭력행위를 지시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누구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수수께끼의 인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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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농성 노조원들이 도장공장 근처에 컨테이너들을 잇대 만든 바리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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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원들과 실체없는 사람들과의 전쟁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경찰이 확보한 TRE 동과 조립공장 건물 옥상에서는 마스크를 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새총을 쏘며 공격한다. 30초 간격으로 볼트와 너트들이 빠른 속도로 오간다. 아차하면 맞는다. 그냥 운좋게 피하면 다행이다. 경찰은 멀찍이서 이 광경을 보고만 있다.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과 노조원들과의 새총 전쟁을 경찰은 묵인하고만 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다. 지난 1월 서울 용산 4구역에서다. 23일부터는 공장 정문 쪽보다는 후문 쪽에서 대치 공방이 격렬해지고 있다.
‘새총 전쟁’이 벌어지는 사이 경찰 헬기가 날아다니며 최루액이 담긴 봉지를 노조원들의 머리 위로 떨어뜨린다. 노조원들은 머리에 직접 맞지 않도록 피하느라 바쁘다. 봉지가 옥상 위로 떨어지자 ‘펑’ 하고 터진다. 순식간에 매운 가루가 주변을 뒤덮는다.
“나는 이미 ‘죽은자’…살아나려면 여기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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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조원이 경찰이 헬기로 떨어뜨린 최루봉지에 직접 다리를 맞아 피부가 벗겨지는 상처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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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최루봉지를 터뜨리지만 노조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정병기 쌍용차 노조 조직부장은 “경찰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용역들의 뒤를 봐주면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을 사실상 돕고 있다”며 “우리는 두 부류의 적을 맞닥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언론에 보도되기 힘들다. 대부분의 언론사 카메라들이 공장 정문 쪽에만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조원들은 하루하루 말라가며 초췌하다. 물이 끊겼고 가스가 끊겼다. 음식마저 끊겼다. 먹지도, 씻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은 조금씩 체력이 바닥나고 있었다. 기껏해야 먹는 건 주먹밥이 전부다. 들어가는 재료는 김 가루와 참치 정도. 이젠 비축한 소금이 다 떨어져 간도 되어 있지 않은 주먹밥이다. 물기가 다 빠져 푸석푸석한 밥을 노조원들이 목으로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 박아무개(42)씨는 “음식이 끊겨 어쩔 수 없이 먹는다”며 “밥이 이렇다보니 더 먹겠다고 욕심 부리는 사람이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노조원들은 “괜찮다”고 말한다.
“살기 위해 싸우는 겁니다. 저는 이미 ‘죽은자’(이들은 사측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은 노동자를 이렇게 부른다)입니다. 다시 살아나려면 여기 있는 수밖에 없어요.”
조립공장 옥상에서 회사 쪽 직원들과 한 바탕 새총 싸움을 벌이던 조병록(가명.34)씨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10년을 이곳에서 일했던 그였다. 하루 아침에 해고통보를 받은 조씨는 “이제 30대 중반이 되어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벼랑에 내몰린 조씨의 심정은 그렇게 ‘죽은자’였다.
잠 자려해도 회사쪽에서 밤새 트는 선무방송에 뒤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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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칠괴동 본사 도장공장 옥상에서 사쪽에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공장건물 벽면에 쓰고 있다. 평택/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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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괜찮다”고 말하는 노조원들이지만 그들의 얼굴은 달리 말하고 있었다. 초췌한 그들의 모습에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모습이 얼비친다. 수염은 얼굴의 반을 뒤덮었고 얼굴빛은 누렇게 떴다. 몸은 말라가고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이들은 지쳐가고 있는 모습을 애써 감추고 있을 뿐이다.
“솔직히 나가고 싶죠. 씻지도 못하고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죽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는 것으니 더 죽겠습니다.” 김아무개(50)씨는 “다 늙어버린 내가 어딜 가겠느냐”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경찰과 사측의 고립과 압박 작전이 가속될 수록 이들의 고통은 점점 커질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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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원들이 점거 농성하고 있는 도장공장 복지동 시멘트 바닥에서 쉬거나 잠을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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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수면부족이다. 흡사 난민수용소같은 곳에서 이들은 찢겨서 버려진 옷가지처럼 대충 건물 바닥에 널부러져 잠을 잔다. 은박지 종이가 유일한 침구도구다. 그나마도 그리 길게 자지 못하다. 회사에서 새벽까지 틀어대는 선무방송은 이들의 취침을 방해한다. 전인권의 ‘행진’이라는 노래가 24시간 내내 울려댄다. 이곳에서 ‘행진’은 증오와 괴롭힘의 노래가 되어있다.
노조 상황실의 무전기에서는 쉴새 없이 무전 내용이 흘러나온다. “(쌍용차) 가족대책위 어머니들이 한나라당사를 조금 전 점거해 공권력 투입중단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12시 30분에 날아온 전보였다. 노조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몸은 지쳐가고 있지만 밖으로부터 날아온 가족들의 위로에 이들은 잠시 흐르는 땀을 닦았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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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도 의료진도 차단, 부상자 이중고
테이저건 맞은 노조원 겨우 반창고나 갈아 최루봉지 직접 맞아 피부 발갛게 타들어가
노조원들의 점거농성이 60여 일 지나면서 부상자도 잇따르고 있다. 수십여 명이 피부병, 타박상 등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 노조원들의 핵심 활동공간인 복지관 1층에 마련된 20여평 남짓한 의무실에는 환자들은 넘쳐나지만 변변한 약도 없고 의료진도 없다.
그냥 침대나 바닥에 깔려 있는 은박 매트리스 위에 누워 쉬는 것이 치료의 전부이다. 취재진이 의무실에 들렀을 때 마침 22일 오후 공장 정문 쪽에서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맞아 얼굴에 부상을 입은 노조원 박아무개(37)씨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직장 동료인 신아무개(40)씨가 반창고를 갈아주는 정도가 전부다.
박씨는 경찰의 해명에 황당해 하고 있었다. 경기경찰청은 “몸에 불이 붙은 동료 대원을 구출하려고 어쩔 수 없이 테이저건을 쏘았다”고 해명했지만 박씨는 “몸에 불 붙은 대원은 이미 경찰이 구출해간 뒤였고, 테이저건을 쏜 상황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도장공장 근처 경비초소에서 한 대원이 불과 2m 거리 앞에서 내 얼굴을 정조준해 총을 쏘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경찰이 쏜 총에 얼굴에 큰 상처가 났고 경찰의 해명에 또 다른 상처를 입고 있었다.
24일 오전 10시. 또 다른 환자가 의무실을 찾았다. 한 쪽 발의 피부가 벗겨져 선홍빛 속살이 드러난 환자였다.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있었다. 경찰이 헬기로 떨어뜨린 최루액 봉지를 다리에 맞은 환자였다. 경찰은 ‘최루액이 안전하다’고 설명하지만 정작 최루액을 몸에 맞은 노조원들의 피부는 빨갛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식초같은 산 성분을 집어 넣어 뿌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의무실을 지키고 있는 노조원은 신아무개(40)씨는 의료진이 아니다. 그냥 두통약과 설사약 등을 관리하며 찾아오는 노조원들을 침대에 뉘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신씨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약 종류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이 전부”라며 답답해 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경찰이 의료진 출입을 원천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그냥 침상에 누워 의무실 천장을 바라본 채 자연치유 되길 바랄 뿐이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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