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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120돌 세계 노동절 기념 이주노동자 대회’에 참석한 한 이주노동자가 ‘우리는 기계 안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노우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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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모임서 단속 ‘따갈리’
세간도 못챙기고 쫓겨나
이주노동자 고된 현실 고발
[현장] 강제추방 외국인 노동자 물건 파는 벼룩시장 “사람은 쫓겨났지만, 물건은 남았잖아요….” 2일 오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편에서 사회진보연대 활동가인 이은주씨가 작은 천막을 친 뒤 정성스레 좌판을 펼쳤다. 이씨가 준비해 온 종이 상자엔 옷가지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출입국 단속에 걸려 강제 추방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입던 옷가지들이다. 이씨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깨끗이 정돈된 남성용 티셔츠에 ‘1000원’, 여성용 블라우스에는 ‘1500원’이라고 적힌 가격표를 붙였다. 이곳에서 아동용 점퍼 한 벌을 산 시민 정은주(36)씨는 “옷이 싸고 깨끗해 구입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이 옷들이 간직한 사연은 듣지 못했다. 다만 활동가들은 이날 좌판에서 팔린 옷의 주인이 지난 2월23일 강제 출국된 네팔인 비노드 따갈리(44)였다고 전했을 뿐이다. 따갈리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이던 지난 2월15일 서울 동대문역 근처 네팔 식당에서 열린 신년 모임에 나갔고, 그를 포함해 9명의 네팔 노동자들이 단속에 걸렸다. 그의 네팔인 후배 ㄱ은 “그날 아침 형이 친구들 만난다고 동대문으로 갔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추방된 뒤 정영섭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사무차장과 ㄱ 등이 서울 문정동 그의 집을 찾았다. 7평짜리 반지하방이었다. 따갈리의 한국 생활은 올해로 14년째였다. 오랜 한국 생활 탓인지, 장롱 등 가구를 빼고도 한 리어카가 넘는 짐이 나왔다. 따갈리는 처음 산업연수생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옷 공장에서 봉제일을 하다가 추방 직전에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닭의 배를 갈라 내장을 빼는 일을 했다. 이주노동자 모임과 네팔 불교 모임에서 그를 만났던 이들은 “힘겹게 살면서도 후배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그가 불교 모임 때마다 들고 다니던 까만색 서류가방에는 ‘5000원’, 29·32·34인치짜리 남성용 청바지에는 ‘2000원’짜리 가격표가 붙었다. 청바지 치수를 보면서, 그의 동료들은 그가 조금씩 불어나는 뱃살 때문에 고민을 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의 여자친구가 쓰던 것으로 보이는 갈색 운동화와 여성용 구두의 치수는 모두 245㎜였다. 고급품은 아니지만, 잘 간수된 게 매우 아꼈던 물건처럼 보였다. 정 사무차장은 “단속에 걸리면 살림살이도 챙기지 못하고 쫓겨나야 하는 출입국 단속의 비인도성을 고발하기 위해 벼룩시장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따갈리가 쓰던 물건을 팔아 생긴 돈은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이날 같은 장소에서 민주노총과 외국인 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노동절 120돌을 기념하는 ‘이주노동자 노동절대회’를 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장래 소망을 적어 보는 ‘희망 꿈나무’ 게시판에는 누군가 한글로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라고 써 붙였다. 앰네스티 한국위원회가 설치한 천막 앞에는 “한국은 유엔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을 비준하라”는 펼침막이 봄바람에 펄럭였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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