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백혈병에 걸려 2007년 사망한 황유미씨의 1기 추모제 모습.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맨 앞)씨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앉아 있다.
|
삼성전자 백혈병, 그 어두운 진실 ③
반도체 공장서 34명 ‘암’ …산재 판정 아무도 없어
“치료비 지원 끊겠다” 회유·협박…산재 신청 막아
직장에서 일하다 암에 걸리면 회사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보상은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업무 관련성을 밝혀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산재 판정을 받는 일은 일반 회사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지원해온 시민단체 ‘반올림’의 집계를 보면, 지난 10여년 사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조혈계 암에 걸린 노동자가 34명이다. 이 가운데 벌써 13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산재 판정을 받은 이는 한 명도 없다. 왜 그럴까?
“큰 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으면 한번 해보세요”
그동안 삼성전자 쪽이 백혈병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신청을 포기하도록 설득해왔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56)씨는 2005년 6월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회사에 산업재해 처리 협조를 부탁했다. 그러나 삼성 반도체 김아무개 과장이 황씨를 찾아 들려준 대답은 뜻 밖이었다. “아버님이 큰 회사를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으면 한번 해보세요.”
회사는 황씨의 사직서를 강요했고 사직서를 쓰는 조건으로 병원비를 대주겠다고 약속했다. 황씨는 병원비 8천만원을 충당하기 위해 딸을 설득해 사직서를 썼으나 삼성은 병원비 지급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07년 3월 6일 유미씨는 결국 숨을 거뒀다.
“10억 정도 줄 테니 시민단체와 접촉 말라” 2007년 9월 1일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삼성반도체 공장에 대한 역학조사를 진행할 때 김아무개 반도체총괄 경영지원실 안전그룹장이 황씨를 찾아와 “10억 정도 해드릴 테니 사회단체 사람은 절대 만나지 말라”며 회유했다. 황씨는 이 사실을 시민단체에 알렸다. 황씨는 지난 4월 중순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삼성이 산재신청을 포기하고 시민단체와 접촉하지 않는 조건으로 병원비와 보상비 등을 제시한 것은 백혈병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만들려는 술수”라고 주장했다. “사람 목숨을 놓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
2010년 4월 15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정씨는 삼성반도체 공장 견학에 자신을 동행해줄 것을 삼성전자 쪽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허재현
|
지난 3월 31일 백혈병 치료를 받다가 숨진 고 박지연씨(삼성전자 온양 반도체공장 근무) 가족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애초 회사에서는 박씨의 투병에 무관심했다. 병원 면회도 드물었고, 사내모금을 했다며 적은 돈을 쥐여줬을 뿐이었다. 그런데 박씨의 소식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회사의 태도가 바뀌었다. 회사 관계자가 박씨 가족을 찾아와 병원비를 대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회사는 박씨 가족에게 박 씨의 산재신청을 포기하도록 종용했다. 박씨 가족은 2008년 4월28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그러자 회사는 박씨에게 지급했던 치료비를 끊겠다고 통보해왔다. “사람 목숨을 놓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박씨의 어머니 황금숙씨는 속이 타들어갔지만 산재신청을 포기하지 않았다. 산재신청을 준비한 가족들은 모두 비슷한 일을 당했다. 고 황민웅(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 근무)씨의 아내인 정애정(34)씨 역시 산재신청을 준비하다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2005년 7월 아이 아빠가 숨진 뒤 2008년 2월께 산재신청을 준비하는데 회사(삼성 관계자)에서 전화가 왔어요. ‘죽은 사람 한 풀어주려다 회사에서 받은 돈(위로금)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 계속 비슷한 전화에 시달렸어요.” 삼성전자가 숨진 황씨가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의료비 일부와 위로금 등을 황씨 가족에게 지원했는데, 산재를 신청하면 이를 회수하겠다고 압력을 넣은 것이다. 삼성전자 “산재 신청에 협조해 왔다” 서면답변 삼성전자는 이런 유가족들의 주장을 부인한다. 삼성전자 홍보팀은 <한겨레>에 10일 보낸 서신 답변에서 “삼성전자는 산재 신청에 협조해 왔고, 방해한 적이 없다”며 “병원비 지원 역시 회사 제도에 의해 지급되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삼성반도체 총괄 경영지원팀의 한 책임자는 “직원들이 퇴직 대상자를 상대로 부적절한 대화를 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지금은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원하면 이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겨레> 취재진은 “삼성전자가 무사고 기록을 유지하기 위해 산재 처리를 못 하게 한다”며 “삼성전자가 산재신청을 도와주지 않고 조용히 퇴사시킨다”고 밝힌 전·현직 직원들의 증언을 다수 확보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사고가 나면) 일단 퇴사시키고 없던 일로 만들려 한다”며 “퇴사하면 산재 처리가 더욱 어려워지니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퇴사를 시키는 것이다”고 진술했다. 산재 보험료 올라가고, 기업 이미지 훼손할까 봐? 희귀병인 베게너 육아종에 걸려 지난 4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퇴직한 김태원(가명) 전 삼성전자 과장의 증언도 비슷했다. 김 전 과장은 “산재처리를 해달라고 했더니 삼성은 퇴사를 종용하며 조건을 달아 위로금을 제안했다”며 “위로금의 조건이 삼성을 비방하지 말 것, 민형사·행정상 소송을 하지 말 것, 재판에서 승소해도 추가로 돈을 요구하지 말 것 등 세 가지였다”고 폭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을 대리한 이종란 노무사는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이 많아지면 산재보험료가 올라가고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것이란 우려 때문에 기업들이 산재신청을 꺼린다”면서 “아픈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글/ 허재현 기자, 영상/ 김도성 피디catalunia@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