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싫어도…이주노동자 이직은 ‘사장 맘대로’

고용허가제 시행 6돌을 맞은 1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미셸 파울로(가운데) 서울·경기·인천지역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 제한’ 규정을 폐지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e-mail]

고용허가제 6년 ‘사업장이동 제한’이라는 족쇄
50%가 “일터변경 어려워”
중노동·부당대우 시달려도
‘출국 당할라’ 참을 수밖에
10명중 1명 불법체류 전락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ㅁ은 가구공장 작업대에 목재를 올리고 내리는 일을 반복했다. 목과 팔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파오자, 그는 사장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사장은 “요양할 시간을 보장해주겠다”고 했지만 이틀 뒤 다시 “일을 하라”고 종용했다.

견딜 수 없었던 ㅁ은 결국 관할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가 진단서를 보여주며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용지원센터는 “사업장 이동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ㅁ이 몸을 추스르는 사이 회사는 고용지원센터에 근로계약해지신고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는 이탈신고를 해버렸다. 해당 고용지원센터 직원은 “사업주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이탈신고를 하면 우리도 방법이 없다”며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하든지 출국하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ㅁ은 회사로 돌아갔다.

17일로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만 6년을 맞았다. 고용허가제는 고용주가 필요한 외국인 인력을 신청하고 정부가 국외에서 취업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선별해서 연결해주는 제도다.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지난 6년의 시행 결과는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노예의 족쇄’를 이주노동자들에게 채워 놓았을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과정 어려움 정도

이런 현실은 이주인권연대가 지난 7월12일~8월7일에 고용허가제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14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설문에 응한 전체노동자 가운데 49.6%가 “사업장 변경이 어렵다”고 답했고, 35.6%는 “사업장 이동을 원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사업장 이동을 하지 못한 이유로는 “회사의 동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29.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5명은 회사 쪽에서 ‘우리가 사인 안 하면 너희는 일 못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터를 옮기는 과정에서 미등록자로 전락한 비율도 전체의 10.5%로 나타나, 일터를 쉽게 옮기지 못하는 현실이 ‘불법 체류자’ 양산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ㅎ의 경우는 회사의 일감이 떨어져 집에서 쉬다가 미등록 불법체류자가 됐다. 사장이 근로계약해지를 하면서 그에게 통보하지 않아 생긴 일이다. 고용허가제는 회사 쪽이 근로계약을 해지한 지 한달 안에 다른 사업장으로 구직신청을 하지 않으면 본국으로 출국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주인권연대는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용지원센터가 사업주의 권한만 인정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며 “고용허가제를 하더라도 사업장 이동 제한을 폐지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손준현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