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 복직 합의’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
5년전 투쟁시작때 눈물 기억
한번도 희망 포기한 적 없어
제2, 제3의 기륭 안 나오길…
‘정규직화 쟁취, 노조탄압 중단, 파견법 철폐.’
전국금속노동조합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의 빨간 조끼 위에 붙어 있는 빛바랜 구호들에선 5년을 훌쩍 넘긴 지난한 투쟁의 세월이 오롯이 묻어났다.
1일 오후 국회에서 금속노조와 기륭전자가 해고자 복직 등에 합의한 뒤, 김 분회장은 “2008년 9월 암으로 숨진 권명희 조합원의 유골이 안치된 모란공원을 가장 먼저 찾고 싶다”고 말했다.
기륭전자 사태는 2005년 7월 저임금과 상시적인 해고 위협 등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이 회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면서 비롯됐다. 노조가 단체협상을 요구하자 사쪽은 노조에 가입한 이들을 계약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이에 노조가 8월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가고 사쪽은 직장폐쇄로 맞서면서 장기농성이 시작됐다.
“회사에 맞서 노조 결성에 나서자 쉬는 시간 10분 동안 조합원 150명이 가입했어요. 노조가 생기면 해고되지 않을 거라면서 눈물 흘리던 모습이 언제나 가장 기억납니다.”
함께 투쟁을 시작한 조합원들은 200여명에 이르렀지만, 5년이 지난 지금 회사에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된 조합원은 겨우 10명뿐이다. 나머지 동료들은 생계를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힘없는 비정규직으로서 ‘골리앗’ 같은 회사에 맞서 기나긴 투쟁을 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던 탓이다.
총파업, 단식, 농성, 포클레인 점거 등 5년여에 걸친 기륭전자분회의 투쟁 현장에서 김 분회장은 늘 맨 앞에 서 있었다. 오랜 단식으로 몸이 축나고 경찰에 몇 차례 연행되면서도 그와 조합원들이 투쟁을 멈출 수 없었던 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김 분회장은 “비정규 파견노동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며 “똑같이 일하고도 월급은 적고, 마음대로 자를 수 있고, 벌레 보는 듯한 눈빛으로 가득 찬 그 끔찍한 삶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말했다. 2008년 1000일 투쟁을 넘기면서는 “여기서 더 어떻게 싸워야 하나” 하는 막막함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희망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김 분회장은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 없이는 ‘3등 노동자’로 고통받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며 “파견법으로 고통받았던 산증인으로서 앞으로도 제2, 제3의 기륭이 나오지 않도록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글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