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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05 09:46 수정 : 2010.11.05 09:46

송경동 시인이 지난달 15일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던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옛 공장 앞에서 포클레인에 올라서 있다. 김태형 기자

[분신 40주기 다시 전태일을 말하다]송경동 시인의 병상편지
비참의 뿌리’인 비정규직이가장 먼저 철폐돼야 한다

새벽녘 다시 고통스러워 잠에서 깼다. 지난 10월15일, 포클레인 농성 때부터 근 한 달 동안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잠에서 깨면 보이는 건 하얀 천장뿐,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중세 어느 고문실에 놓였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기도 하다. 10여일째 병상에 누워 있자니 마치 내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무슨 짐승이라도 된 듯하다. 이러다 문득 미쳐버릴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몇 번이고 느껴야 했다.

이런 몸 상태를 갖고 나서야 그간 말로만 이해한다고 해왔던 고공농성자들의 기분을 정말 조금 알 수 있었다. 부평역 앞 폐쇄회로텔레비전 카메라 탑 위에서 100여일을 농성하고 내려온 지엠(GM)대우 비정규직 동지 한 명이 심한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했던 연유를 알 것 같다. 또 그렇게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수십m 철탑에 목을 매달거나, 미포조선 앞 100m짜리 공장 굴뚝에 올라가 있었던 용인기업 사내하청 동지들의 고통을 조금은 가늠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빨리 내려왔다고 쉽게 말했던 케이티엑스(KTX) 비정규직 여승무원들의 불안을 조금은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또 100일 넘게 한강다리 위에 둥지를 틀고 지내다 아무런 성과 없이 내려와야 했던 비정규 건설노동자들의 원한을 조금은 숙고해 볼 수 있었다.

세계 여느 나라들처럼 지난 십수년 한국 사회 역시 900만명에 이른 비정규직 문제를 철저히 외면해왔다. 이는 전태일의 친구를 자처했던 정권이나, 전태일의 적임을 공공연히 표명하는 현 정권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신자유주의 노선에 관한 한 그들은 배다른 형제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리틀 노무현도, 다시 행동하는 양심도, 반엠비(MB)도 아닌 신자유주의 그 이후의 진일보한 사회체제다. 무슨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10월16일 오후 2시부터 기륭전자 포클레인 농성장 주변으로 경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떤 선택이 필요한 시간. 당시 내가 올라 있던 5m 높이 포클레인 위에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전태일 평전>이었다. 미안하지만, 어느새 역사의 박제나 골동품이 되어 버린 그 책부터 태워버리고 싶었다. 제2의 용산을 만들고 싶냐고, 제2의 쌍용을 만들고 싶냐고, 경찰은 대화와 교섭 중재에 나서라고 목이 터져라 절규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하고 비릿한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웃음뿐이었다. 3차 경고방송이 끝나는 순간, 나와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은 눈과 입을 닫고 전깃줄 한 가닥을 잡고는 뒤로 몸을 젖혔다. 손만 놓으면 그만이었다. 가을바람이 참 시원했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이 솟았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벽과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해, 라는 마음뿐이었다.

전태일 열사 40주기라고 한다. 그가 불태웠던 근로기준법에 원천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비정규 특수고용 인생들이 900만에 이르다 보니 사실 한 청년노동자의 40주기라는 것도 별반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의 40주기 기념 문화제가 시청광장에서 열리던 날 구미 케이이시(KEC) 노동자들은 사선을 오가고 있었고, 급기야 김준일씨가 분신을 했다는 휴대전화 문자가 찍혀 왔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가장 먼저 이제 그만, 신자유주의 노예노동의 핵심이자, 모든 소외와 빈곤과 분열과 비참의 뿌리인 비정규직 제도부터 철폐시켜야 한다. 자신 내부 생태공동체의 기본적인 안전과 평화도 지켜내지 못한다면, 4대강도 그 어떤 공통의 민주주의도 지켜내기 힘들 것이다. 대안이 있느냐고? 그런 물음 자체가 공동체에 대한 범죄임을 우리는 이제 말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정당한 비판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미래를 위한 오늘의 전망과 대안이 되기도 한다.

루소의 말이던가. 최소한 민주공화국이란 ‘어느 누구도 자신을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해서는 안 되며, 어느 누구도 다른 시민들의 굴종을 사버릴 정도로 부유해서도 안 되는 사회’다.

송경동·시인


※송경동 시인은 지난달 15일부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함께 포클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이다 26일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바람에 발뒤꿈치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현재 병원에 입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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