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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시사평론가, 박계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최병승 전국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 박보은 청년유니온 회원이 지난 1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전태일은 노동운동의 미래다’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건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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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40주기 다시 전태일을 말하다]
전태일은 차비를 털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며 연대를 실천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노동의 계급화’로 이리저리 갈라진 2010년, 전태일이 그리운 이유다. 그를 추억하고 노동의 현재를 고민하면서 좀더 인간적인 노동의 밑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지난 1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1970년대 평화시장 옆 중부시장에서 미싱을 돌리던 박계현(51) 전태일재단 사무총장과 ‘청년유니온’ 회원인 박보은(22·대학생)씨, 지난 7월 대법원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직접고용 판결을 받아낸 당사자인 최병승(34·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씨가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사회를 봤다. 전태일은 너무나 배고픈 젊음이었으나, 이들은 더 나은 노동의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푼 채 이야기를 쏟아냈다. 방담/ 전태일은 노동운동의 미래다 사회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에서 일어섰고 전태일은 청계천에서 쓰러졌다. 둘 사이에 묘한 대비가 있다. 전태일을 처음 안 건 언제였나?박계현(이하 박) 나는 태일이 형이 분신하고 나서 6년 지난 1976년에 평화시장보다 낙후한 중부시장의 체육복 공장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평화시장은 저녁 8시30분이면 일이 끝났는데, 중부시장은 밤 9~10시 돼야 끝났다. 78년부터 노동자들이 다니는 제일교회에 나갔는데, 삼각산 수도원으로 수련회를 갔다. 태일이 형이 분신하기 전에 와서 막노동한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79년부터는 청계피복노조 대의원을 했는데, 그 이전부터 일 끝나면 태일이 형 얘기를 들으러 이소선 어머니 집으로 가서 자곤 했다. 그때 창동 어머니 집은 늘 노동자 20~30명의 모임으로 붐볐다. 그러면서 태일이 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최병승(이하 최) 고등학교 때 학내 집회나 축제 때 선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데모 나가자는 선배들과 시내에서 술을 먹기도 했는데 그때 받은 책 가운데 하나가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었다. 1995년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봤다. 나는 책보다 영화가 더 인상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와 대학을 오가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한참 고민하던 시기라 더욱 그랬다.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지표를 찾게 만들었다. 그 이후 공장에 가서 노동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보은 대학 1학년 때 학생회에서 디브이디로 영화를 봤다. 엄청 울었다. 영상을 보면서 나 한 명 착하게 살고 어려운 사람들 조금 도와준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 이후 책을 읽으며 전태일이란 사람이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사회 나는 딱 10년 전인 2000년 보수 성향의 기독교계 라디오 방송에서 피디 하다 한 원로 목사를 비판했다고 잘렸는데, 그 뒤 전단지를 돌리던 중 전태일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전까지는 <조선일보> 보면서 한나라당 지지했다.(웃음) 삶의 변곡점에서 만난 전태일의 의미가 새로웠을 텐데. 박보은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반대하며 분신한) 허세욱씨를 보면서 전태일의 처절한 마음과 지금 많은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과 단식이 사실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결국 현재 상황과 전태일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4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환경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다.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으며, 전태일이 간절히 원하던 게 8시간 일하고 근로기준법에 나온 대로 하고 싶다는 거였는데, 지금의 청년유니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전태일 열사가 그 나이에 그런 결단을 했다는 점에서 ‘친구’로서 존경한다. 최 나는 2000년부터 공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많이 힘들었다. 지금이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묘소에 가기 좋은 계절이다. 터미널 내려서 올라가는 길에 낙엽이 떨어지고 호수도 있다. 가면, 소주 몇 병 사들고 와서 “어찌할 거요, 당신은?”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친해진 사람도 있다. 요즘엔 머리 좀 굵었다고 안 찾아가지만….(웃음) 한창 뭔가 시작하고, 옮기고, 결정해야 할 때, 감성이 풍부한 20대 때 나는 많이 갔다. 묘소 가서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살라고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냐”고 묻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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