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09 09:14
수정 : 2011.05.0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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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3일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 옆 대형 광고판 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펼침막을 내건 채 고공농성을 벌이고, 한 동료 노동자가 멀리서 농성하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투쟁이 9년째를 맞았으나, 회사 쪽은 여전히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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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정규직 7년만에 신규채용…비정규직 40% 발탁”
정규직 노조 “회사에 건의” 비정규직 노조선 “거부”
“조합원 신분으론 어려워” 예전에도 노조탈퇴 부추겨
“놔둘수도 막을수도 없어” 비정규직 노조 속앓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위원장 이경훈)이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을 단체협약 요구안으로 확정한 가운데 현대차가 8일 7년 만에 생산직 신규채용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회사와 노조 관계자는 “신규채용 규모와 시기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신규채용은 정년퇴직 등 자연감소에 따른 인원 보충으로 100~200명 사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정년퇴직 등으로 그동안 800명 이상이 나간 만큼 앞으로 신규채용을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정규직노조는 신규채용 인원 중 약 40%(40~80명)를 하청노동자 가운데 발탁해 채용하도록 회사에 건의할 방침이다. 하지만 현대차 비정규노조(울산, 아산)는 지난 6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조와 간담회를 열고 “불법파견에 따른 정규직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청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신규채용이 실시되면 비정규 노동자들의 분열만 심화될 것”이라며 “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비정규노조, 정규직 채용 거부 왜? 지난달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규직노조는 “그동안 신규채용에서 40%를 하청노동자로 채웠고, 앞으로도 이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사회적 비난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정규직노조가 주장하듯 언뜻 보기에는 하청노동자의 정규직 채용이 비정규 노동자에게 혜택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독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자료를 보면 2002년 237명, 2003년 139명, 2004년 314명 등 3년 동안 690명(신규채용의 약 35%)의 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하지만 부작용이 심각했다. 2003~2004년 비정규노조가 만들어진 뒤 신규채용이 시작되자, 조합원들이 대거 비정규노조를 탈퇴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정규직으로 뽑히기 위해서는 하청업체 사장의 추천서가 필요한데다 조합원이라는 ‘눈엣가시’ 같은 신분으로는 채용이 어려워 수백명이 노조에서 탈퇴했다”며 “정규직이 된 690명 중 비정규 조합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오 정책위원은 “회사는 비정규노조의 힘을 약화시켜야 할 시점에 늘 신규채용을 들고나왔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부작용이 심각하자 정규직노조는 2005년부터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신규채용에 합의하지 않겠다”고 비정규노조에 약속했다. 현 정규직노조는 이런 약속까지 뒤집고 신규채용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 관계자는 “원청의 직접고용이 어려운 2년 이하 근무 하청노동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 40% 채용을 제안한 것”이라며 “비정규노조와 좀더 심도있는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 속 끓는 비정규직노조 현대차 비정규노조는 하청노동자 발탁 채용으로는 비정규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비정규노조 관계자는 “신규채용으로 하청노동자 일부가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빠져나간 비정규직 자리에 새로운 비정규직이 채워지는 등 현대차에서 차별받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8000여 하청노동자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조는 하청노동자 정규직 채용을 대놓고 반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비정규노조 관계자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정규직은 꿈이자 희망일 텐데 부작용이 크다고 해도 노조가 그 길을 적극적으로 막는 것도 힘든 노릇”이라며 “속이 터진다”고 했다. 현재 비정규노조 조합원은 최근 노조 탈퇴 작업 등으로 약 1500명까지 줄었다. 노조 관계자는 “정규직노조가 진정 비정규직을 위한다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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