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9 10:18
수정 : 2011.06.29 10:18
한진중 85호 크레인 농성 노동자들 위한 ‘문화제’ 열려
“밥뭇나 끝까지 투쟁하자, 욕봐라…우리도 욕보께”
“85호 들리나. 밥뭇나. 끝까지 투쟁하자. 욕봐라. 우리도 욕보께.”
굵고 진한 경상도 사투리가 고공을 울렸다.
지난 28일 오후 8시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건너편. 하루전 부산지방법원의 강제퇴거 집행으로 회사밖으로 나온 80여명의 노동자들이 ‘85호 크레인’을 향해 외쳤다. 서울·강릉·포항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40여명의 사람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문화제가 열린 것이다.
85호 크레인 중간 난간에는 지난 27일 부산지방법원 집행관 등이 강제퇴거를 집행한 뒤 12명의 해고노동자들이 올라가 있다. 그 위에는 여전히 김진숙씨가 174일째 농성중이다.
문화제에 참가한 대학생 최희성(21)씨는 최근 명도집행이 이뤄진 서울 명동3구역 상인들과 함께 ‘카페 마리’에서 상인들의 이주 및 생계 대책·보상기준 마련 등을 요구하며 연대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7일 이곳을 찾아 이틀째 풍찬노숙하고 있다. 최씨는 “부산 85호 크레인과 서울 명동3구역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억울함’이 있는 것 같다”며 “트위터로만 보다가 혹시나 공권력 투입해서 불상사가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기차 타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트위터 아이디 @jihoo1213씨는 하루 회사 휴가를 내고 자리에 함께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원회의 아기가 아프다는 것도, 그 아기가 돌이라는 것도, 크레인 위가 어떤 상황인지, 뭐가 필요한지를 속속들이 알게된다”며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문제는 결국 회사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에게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라고 말했다.
문화제에서는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연대의 발언을 하는 한편 노래를 불렀다. 성공회대학교에 다닌다는 두 대학생은 가수 박창근씨의 노래 ‘얼마나’를 불렀다. “얼마나 더 많이 죽어야/이 의미를 깨달을까/친구야, 오랜 친구야/그 대답은 어디에” 낯선 가수의 낯선 노래였지만, 조선소 공장에서 일만했던 시커먼 손의 해고노동자들은 가사를 씹고 눈시울을 붉히며 노래를 들었다.
끌려나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심경은 남다르다. 해고자 남편을 둔 박은경씨는 한살배기 아들을 안고 나왔다. 지난 27일 강제집행때 밖으로 끌려나온 남편과 오랜만에 같은 우산을 썼다. 그러나 박씨는 기쁘지 않다고 했다. 박씨는 “남편과 만났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며 “저 크레인 위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우리 가족들의 아빠들이고 진숙이 이모도 역시 우리 가족인데 전기가 끊겨서 지난 이틀동안 제대로 연락도 되지 않고 매시간 불안하다”고 말했다.
박씨의 남편 최아무개(34)씨도 “85호 크레인이 더 많이 걱정됩니다.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고노동자 한상철씨는 “노동조합 지도부, 회사는 우리를 버렸지만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트위터로 마음을 나누는 분들이 계셔서 지난 190여일을 버텨왔고, 저 고공크레인 위에 있는 ‘12명의 스머프’들은 살아가고 있다”며 “감사하는 마음을 대신 전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색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스머프’라고 불렀다.
문화제가 열리던 1시간30분 동안 건너편 85호 크레인에 새롭게 올라간 12명의 스머프들은 계속 크레인 난간 위에 내내 서서 반대쪽을 바라보며, 함께 손을 흔들고 구호를 외쳤다. 그 사이에는 철조망이 새로 쳐진 영도조선소 담벼락과, 전경버스 수십여대가 가로막고 있다. 85호 크레인 위 ‘임시 천막’에는 계속 비가 들이쳤다.
부산/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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