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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6 18:00 수정 : 2005.08.27 17:00

전남대 30년만의 명예졸업장…팔순 노모 눈시울

 “하늘로 가불고(가버리고) 없는 딸을 기억해 줘서 감사할 따름이지요….”

26일 오전 11시 전남대 사범대 후기 졸업식장에서 선덕애씨(89·전남 보성군 노동면)씨는 27년전 숨진 막내 딸 박기순씨의 명예 졸업장을 받고 눈시울을 붉혔다. 전남대는 이날 과거 민주화운동으로 학위를 받지 못했던 고 박기순씨 등 10명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박기순씨는 1976년 역사교육학과에 입학해 78년 3학년 때 시국사건으로 무기정학을 당한 뒤 여대생 최초로 공장에 위장 취업했다. 그는 그해 7월 광주시 광천동에 들불야학을 창립해 노동자 야학 운동을 주도하다가 12월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박씨가 창립한 들불야학은 1970년 대 말 광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주민운동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박씨가 세상을 뜬 뒤 들불야학을 이끌던 윤상원씨는 1978년 12월 27일 일기장에 ‘영원한 노동자의 벗 기순이가 죽던 날’이라고 기록했다. 윤씨는 그날 “불꽃처럼 살다간 누이야/ 왜 말없이 눈을 감았는가?…훨훨 타는 그 불꽃 속에/기순의 넋은 한 송이 꽃이 되어/우리의 가슴 속에서 피어난다”고 슬퍼했다.

26일 전남대 사범대 후기 졸업식장에서 선덕예씨가 27년 전 숨진 막내딸 박기순씨의 명예 졸업장을 받고 있다.


윤씨는 5·18민중항쟁 때 마지막 항쟁 지도부 대변인으로 계엄군의 도청 진입작전에 맞서 투항을 거부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영웅적인 죽음을 맞았다. 5월의 대표적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6월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기리는 창작 노래극에서 처음 불려졌다. 이들과 함께 들불야학에 참여했던 박용준(80년 5월 사망)·박관현(82년 교도소 단식 중 사망)·신영일·김영철·박효선씨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들불처럼’ 살다가 차례로 세상을 떴다.

박씨의 큰 오빠 박화강(58·국립공원관리공단 상임감사)씨는 “그동안 누구보다 가슴이 더 아프셨을 어머니가 (명예 졸업장 수여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셨다”며 “대학과 사회에서 동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강정채 전남대 총장은 이날 졸업식이 끝난 뒤 고 박기순씨의 가족들을 초청해 점심을 함께 하며 위로했다.

광주/정대하 기자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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