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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강사들 ‘예치금’ 족쇄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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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에서 10%가량 떼어내 ‘적립’ 중간에 그만두면 못받아 법조계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 커”
서울 ㄷ학원에서 과학 강사로 일한 강아무개(28)씨는 임금 중 150만원을 받지 못했다. 학원이 ‘퇴직금’ 명목으로 박씨가 일한 여덟달 동안 다달이 월급에서 일정액을 따로 떼어 적립해 놓았는데, 강씨가 자신을 대신할 강사를 구하지 못하고 그만뒀기 때문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부족했던 강씨는 끝까지 따질 겨를이 없어 이 돈을 포기하고 말았다.지난해 5월 광고를 보고 인천의 ㄷ학원을 찾은 박아무개(28)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학원 원장은 연중 한 달치 월급은 떼어 놓는다고 설명했고, 실제로 월급의 10% 가량을 주지 않았다. 박씨는 학원을 그만두기 한 달 전에 학원에 사직한다고 알렸지만, ‘보험금’조로 적립했던 180만원을 돌려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씨는 결국 요구대로 1년을 채워 일하고서야 돈을 받았다. 박씨는 “돈에 볼모 잡혀 억지로 일한 것 같아 속상하다”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최근 학원가에 ‘예치금’ ‘퇴직금’ ‘보험금’ 명목으로 강사들의 월급을 떼어 두는 신종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학원들이 수강생 이탈에 따른 손해나 후임 강사 모집비용을 구실로 강사들에게 이런 이름의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치금은 실질적 의미의 퇴직금과 달리, 일정 기간 근무나 후임 강사 확보를 조건으로 내걸어 불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용자가 근로계약 불이행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하거나 노동자 임금을 강제로 저축하지 못하게 하는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 졸업자 10명 가운데 1명이 학원 강사로 취업할 정도로 많은 고학력자들이 학원 강사를 주요한 취업방편으로 삼고 있다. 학원 강사들은 이처럼 장기화된 취업난으로 구직자들이 많은 현실을 학원들이 악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의 한 학원을 그만두면서 전체 급여의 10% 가량을 예치금으로 떼인 박아무개씨는 “그만한 돈을 받기 위해 소송을 내기도 그렇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다가 소문이 나면 다른 학원에서 일하기 힘들 것도 같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아예 한술 더 떠 학원 쪽이 밀린 임금을 주지 않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7월 건강 문제로 학원을 나온 오아무개씨는 원장이 대체 강사 모집광고비 등을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받아내겠다고 압박해 체불임금 지급 요구를 접어야 했다.
학원 운영자들은 갑자기 그만두는 강사들로 인한 고충을 호소한다. 광주에서 3년 동안 학원을 운영해 온 정해진(37)씨는 “우리 학원에는 예치금 제도가 없지만, 그렇게 하는 다른 학원들을 보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며 “장기근속 여부에 중점을 두고 가능하면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법인 에이스의 김도형 변호사는 “강사가 얼마 되지 않아 학원을 그만두기 때문에 손해가 발생한다면, 학원 쪽이 그 손해를 차후에 입증해야 할 문제”라며 “국외연수 등 교육투자비가 든 경우라면 몰라도, 일찍 그만둔다는 이유로 임금을 떼거나 예치금을 수단으로 노동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불법행위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본영 유선희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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