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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영등포2가 민주노총에서 현지도부를 성토하며 이수호 위원장 사퇴회견장에 몰려와 피켓시위를 하는 강경파 조합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사무총국 적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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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회견조차 못해 비대위 구성 진통예고
차기 겨냥 경쟁속 노동현안 휘둘릴 수도
이수호 위원장 등 민주노총 현 지도부가 20일 비리 사건 이후 심화하는 내부 분열 속에서 총사퇴했다. 민주노총은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하반기 투쟁을 이끌어가기로 했다. 이날 이 위원장의 사퇴 기자회견도 반대파들의 시위로 무산된 것에 보여지듯, 내부 혼란 속에서 한시적 비대위가 혁신과 조직 통합을 이뤄낼지는 의문이다. 현재로서는 위기 극복을 위한 통합의 ‘구심력’보다는 안으로 끓어오르는 내부 정파 다툼의 ‘원심력’이 더욱 두드러지는 실정이다.
‘분열양상 조성’으로 지도부 총사퇴=이 위원장은 20일 “진정한 혁신과 단결, 투쟁을 위해 저의 사퇴가 도움이 된다면 그 길을 택하기로 결심했고, 임원진들 역시 같은 뜻을 모았다”며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1월16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대화노선’을 내세우며 당선된 지 1년9개월 만이다. 이 위원장은 “비정규직입법 과제의 엄중성을 고려해 하반기 투쟁을 마치고 사퇴하려 했으나, 하반기 투쟁이 어렵게 되는 분열양상이 조성됐다”고 배경을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21일 오후 2시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열어 비대위 구성 방안을 논의한다.
앞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강승규 수석 부위원장 비리 사건 뒤, ‘하반기 투쟁 뒤 사퇴’ 결정 및 고강도 비리 근절책 등을 내놓으며 조직 위기에 대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현 지도부의 ‘사회적 대화 노선’에 반대해 온 쪽을 중심으로 한 일부 조직·간부들은 연일 지도부 사퇴를 요구해 왔다.
비대위가 집행력 확보할지 의문= 지도부가 분열보다 통합을 역설하며 총사퇴한 것에서 드러나듯, 민주노총은 내부의 분열과 혼란을 수습해야 하는 일차적 과제에 맞닥뜨리게 됐다.
당장 비대위 구성부터 문제다. 민주노총의 3대 파벌로 불리는 국민파·중앙파·현장파 모두는 일단 비대위 구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현실적인 집행력과 통합력’이 확보되는 비대위 구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지도부 총사퇴를 놓고도 간부들의 반응은 엇갈렸고, 일부 인사들은 상대 정파에 심각한 불신을 표시했다.
지도부 사퇴를 이끌어낸 중앙파와 현장파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강한 반대와 함께 이 위원장의 ‘사회적 대화 노선’을 비판해 왔지만, 당면 현안을 주도적으로 해결·돌파할 만한 집행력과 대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대위가 구성된다 해도, 비정규직 입법 투쟁과 조직혁신 등을 풀어갈 구체적 대안이 부재한 상태다. 주도세력의 실종, 당면 노동현안에 대한 전략전술의 부재로, 비대위는 어느 한 세력에 의해 주도되기보다는 ‘정파 간 최대공약수 찾기’에 그칠 것이라는 게 노동계 안팎의 일반적 관측이다.
가장 큰 우려는, 민주노총 차원의 각종 현안이 차기 지도부 선거를 겨냥한 내부 다툼의 소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고위 간부 출신의 한 인사는 “정파 투쟁을 중단하고, 통합을 통해 위기를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조합원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의 이런 위기는 단순히 노동계 내부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노동계와 관련한 각종 사회현안 해결의 실마리도 함께 실종된다는 데 더 큰 문제점이 있다. 양상우 기자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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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민주노총위원장이 20일 오전 집행부 총사퇴 회견을 강경파들이 저지하자 회견을 포기한 채 착찹한 표정으로 위원장실에 앉아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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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파업 등 현안 애정 “노동비서관 광경” 보도 불편 노동계를 향한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에 빗장이 걸린 것 같다. 20일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다음주 화물연대의 파업이 예정돼 있지만, 노 대통령의 관심과 애정은 싸늘하게 식어만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청와대와 이들 노동단체 사이의 대화통로를 맡고 있는 노동비서관 인사 문제다. 권재철 노동비서관이 격무에 지쳐 지난 8일 사표를 제출한 뒤, 후임으로 김영대 근로복지공단 감사가 임명 직전 단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권 비서관이 노동계에 대해 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양대 노총 역시 권 비서관에 대한 경질 요구를 해왔다”며 권 비서관의 사퇴를 ‘경질’로 해석한 것이 노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노 대통령은 “권 비서관이 강경파라면 도대체 강경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후임자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고 인사를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권 비서관은 사무금융노련 부위원장 출신으로,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6년째 노동을 담당해왔다. 임명을 코앞에 두고 탈락한 김 감사는 1980년대 청계피복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지냈다. 노 대통령은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노동비서관의 역할을 노동단체를 상대하는 데서, 일자리 창출과 고용문제 해결 쪽으로 옮기도록 하라”며 “노동단체를 상대하는 역할은 총리실에서 맡도록 하라”고 새로운 업무분장을 지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노동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문제를 풀려고 하다가 번번이 실패하자 실망으로 바뀐 데 이어, 이제는 포기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노동계와의 대화 단절에 대한 아쉬움을 가끔씩 토로해왔다. 지난 8월25일 <한국방송> ‘참여정부 2년 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에 출연했을 때에는 참여정부의 최대 실패작으로 노동정책을 들었다. 그는 “노사정 대타협, 내가 노동자들 위해서 좀 한다고 했으니까, 내가 그래도 신뢰가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내가 되면 노동자들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노동자들 설득 못해 그것이 가장 뼈아픈 것”이라고 말했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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