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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의 ‘대물림 불법체류’ |
"애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라니요"
6년전 몽골에서 한국에 온뒤 결혼해 지난해 8월 아기를 출산한 아로아(34), 인디카(33.여)씨 부부는 요즘 딸 아니나(2)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아기가 칭얼대도 단속이 두려워 바깥 외출도 하지 못하고,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의료보험증이 없어 엄청난 진료비를 내야 한다.
더구나 불법체류자가 낳은 자식은 태어나자마자 불법체류자신분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아기 역시 단속이 된다면 말 그대로 벌금을 내고 추방까지 당할 수 있다.
인디카씨는 "우리도 사람인데 아기도 낳고 키우고 싶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아기 역시 불법체류자로 분류돼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라며 "아기가 앞으로 한국말을 사용하고 한국음식을 먹으며 자랄텐데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7년전 스리랑카에서 온 하산따(32), 야무나(31.여)씨 부부 역시 요즘 아들 영광(5)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이들 역시 한국에서 만나 영광이를 낳았지만 자신들이 불법체류자여서 영광이 역시 불법체류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로 돌아가자"는 아빠의 말에 영광이는 "아빠 난 스리랑카 몰라. 내 친구들은 다 한국에 있어. 나 한국에서 살거야"라며 울부짖는다.
영광이는 태어날 때부터 한국 아이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스리랑카말을 거의 할 줄 모른다.
국내 불법체류자가 20만명을 육박하는 가운데 이들처럼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국민에 대해서만 법을 적용하는 이른바 `속인주의' 정책에 따라 `대물림 불법체류자'가 크게 늘고 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가 지난 17일부터 안산.시흥지역 불법체류자 가운데 이들처럼 아이를 출산한 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은 결과, 벌써 20여건이 접수됐다.
센터는 앞으로 불법체류자 부모의 아기가 한국에서 살면서 각종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인권단체 등과 연계, 구제운동을 벌이기로 했으며, 오는 31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이같은 실상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센터 소장 박천응 목사는 "불법체류자가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아기에 대해 태어남과 동시에 죄인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는 현행 법률은 문제가 있다"며 "인도적인 차원에서 아기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일본처럼 영주권이라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국적 중심의 속인주의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불법체류자의 자녀에 대해서는 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한국에서 태어난 불법체류자 자녀들에 대해 영주권을 부여하는 문제 등을 보건복지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공동으로 연구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속인주의는 국적을 기준으로 모든 자국민에 대해 법을 적용하는 것이고, 속지주의는 국적을 불문하고 자국영역을 기준으로 그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법을 적용하는 원칙이다.
한국이나 일본 등은 속인주의를 채택한 반면 미국 등은 속지주의를 채택, 우리 국민이 괌이나 하와이 등으로 가 아기를 낳을 경우 미국 국적을 자동으로 취득하게 된다.
http://blog.yonhapnews.co.kr/kcg33169
강창구 기자 kcg33169@yna.co.kr (안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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