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ㅇ아파트 현장의 분야별 노동자 연령
|
“접시만 날라도 그 돈 버는데 공사판 나오겠어?”
“눈을 씻고 한번 찾아보쇼. 기자양반 같은 젊은 사람이 있는지. 전부 아버지뻘이야!” 지난 24일 낮 서울 도심의 한 주상 복합건물 공사 현장. 점심 먹고 낮잠을 청하려던 20년 경력의 건설노동자(노가다) 조성태(58)씨는 금쪽 같은 휴식시간을 방해받는 게 못마땅한 듯 말을 꺼냈다. “여기 있는 한국 사람, 대부분 50대야. 일이 힘든 골조공사는 더 그래. 이 옆에 골조공사하는 데 한번 가봐. 거긴 나이가 다 환갑이야!” 조씨의 목소리가 높아질무렵, 식사를 막 끝낸 동료들이 다가온다. 안전모를 벗은 머리 위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며 깊은 골이 팬 이마 주름이 선명히 드러났다. “촌에 가면 노인들만 농사를 짓는다면서. 딱 우리가 그 꼴이지.”(김삼수·59), “젊은 애들이야 다들 고등학교까지는 나왔으니 접시만 날라도 우리보다 낫겠지.”(허태진·52), “조카 놈한테 따라다니며 일 배우라고 하니까 안 한대. 지금 택시 운전해. 하기야 여름 땡볕, 겨울 찬바람에 이 짓을 왜 하겠어!”(서영일·60) 건설현장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가면 건설 현장에서 앞으로 젊은이는 눈씻고 봐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하소연이다.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는 사회 풍조 탓도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인력 수급에 대한 대책이 없어 젊은 인력의 수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속화되는 노령화는 건설현장의 안전과 기술에 우려를 던져준다. 전기·설비빼곤 평균 45살 넘어외국인 노동자로 공백 ‘땜질’
도제식 기술전수 차질 안전 위협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력 공백을 빠르게 채우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현장 경험자들의 생각이다. 요즘 건설현장에서는 철근 작업자의 90%, 형틀목공(목수) 50~60% 정도가 외국인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이탈도 잦고 신분도 불안해 숙련된 기능인력이 드물다. 이 공사 현장에서도 형틀목공이나 콘크리트, 철근 작업 등 고급 기능인력들은 대부분 내국인 고령자다. 현장에 인력을 대는 협력업체(하청업체) 소장 허아무개(50)씨는 “싼값으로 땜질하듯 외국인을 쓰는 게 결국 젊은사람들 오는 것을 막고, 늙은 사람들 떠나게 하는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젊은이한테 괄시받고, 외국인들에게 치여 밀려나는 신세”라며 옆에 있던 신동구(62)씨가 허씨를 거든다. 전기나 배관 설비 등 비교적 젊은(?) 전문 인력들이 많다는 마감공사 현장 역시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마감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의 주요 기술인력 평균 나이를 살펴보니, 전기나 설비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평균 나이는 모두 45살이 넘었다.<표 참조> 10~15명 단위로 이동하며 건설인력을 공급해온 ‘오야지’(소사장) 시스템도 해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목수 배아무개(53)씨는 “남들은 우리끼리 해먹는다고 욕하지만, 젊은사람은 못 버티고 외국인들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무슨 일을 가르치냐”고 되물었다. 그는 “정 붙은 사람들끼리 일하다 떠나면 그만”이라고 했다. 도제식으로 기술을 대물림하는 구조가 흔들리는 것이다. 숙련도가 떨어지면서 크고 작은 문제도 생긴다. 콘크리트 작업을 하는 구아무개(46)씨가 사례를 든다. “나무형틀에 못을 세 번 박아야 하는데 제대로 못 박아, 두 번만 박는다고. 그러면 이게 갈라져 터질 때가 있어. 돈 손해는 물론이고, 공기도 못 맞춰!” 설비기술자 심아무개씨가 보는 고령화의 이유는 간단했다. “목수나 인테리어는 단가가 센데, 쉽게 못 배워요. 현장 경험 없으면 하루 5만5천원 받고 5년 이상 버텨야 하고, 일이 고정적이지도 않습니다. 전망도 별로고 ….” 아침 7시40분에 나와 오후 6시까지 천장 도배를 한다는 김아무개(36)씨도 종일 허리에 연장벨트를 차고 평균대처럼 생긴 작업대 위에서 벽지를 붙이고, 솔로 문지르고, 다시 주걱과 롤러로 벽지를 다듬는 일을 반복했다. 종일 위를 쳐다보고 있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단다. 2년 경력인 그의 일당은 6만5천원. 경력 5년이 넘어야 일당이 8만원을 넘을 수 있다. 김씨의 ‘오야지’인 안아무개(48)씨는 “남자들은 주로 3주 코스의 학원에서 도배를 배운 뒤 현장에 오는데, 10명이 오면 버티는 사람은 1~2명뿐”이라고 말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