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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아들과 맘놓고 놀이공원 갈겁니다”
“이제는 안 잡혀 가지?” “그래, 너 대학 가고 결혼할 때까지도 같이 있을 수 있어.” 가을이 끝자락으로 내달리던 10일, 의정부의 허름한 단칸방은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대화로 빨갛게 물들었다. 푸르자(34)는 네팔 사람이다. 물론 외국인이다. 그러나 지난 14년 동안 그는 외국인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그는 ‘불법체류자’였다. 그가 드디어 ‘합법’ 외국인이 됐다. 서류 한장에 불과한, 그러나 자신이 이 나라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 줄 그 서류를 얻기 위해 푸르자는 한없이 마음을 졸여야 했다. 돈벌이 때문만이 아니었다. 한국 국적인 여덟살짜리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한겨레> 6월13일치 11면 참조) 지난 6월 “아들을 두고 강제출국 당할 수 없다”고 호소하던 그가 지난달 법무부로부터 외국인등록증을 받고 불법체류자란 딱지를 뗐다. 1991년 관광비자로 한국에 온 푸르자는 공장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 97년 아들 유진(8)이를 낳았다. 불법체류 신분이어서 혼인신고를 못했고, 유진이는 엄마 성과 호적을 따랐다. 부인이 이듬해 집을 나갔고, 푸르자는 불법체류자 단속과 강제출국 위험에 떨어야했다. 강제출국되면 어린 아들만 홀로 남게 될 처지였다. 외국인노동자 상담소를 운영하는 안양 전진상복지관을 통해 법무부에 진정서를 냈지만 14년이라는 불법체류 기간이 너무 길었다. 푸르자의 안타까운 사연에 망설이던 법무부는 보도가 나간 뒤 마침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자진출국해 불법체류 상태를 해소한 뒤 자녀를 한국에서 키우기 위해 재입국을 원할 경우 입국 및 체류 허용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유진이를 옆집에 맡기고 8월16일 네팔로 떠났다. 아버지도, 아들도 떨어져 있기는 처음이었다. 14년만에 돌아간 고향 가족들은 눈물로 푸르자를 만났다. 겨우 1주일 동안 14년 밀린 회포를 푼 뒤 푸르자는 네팔 주재 한국대사관에 살다시피하며 재입국 비자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려 받은 비자는 ‘F1’ 방문비자. ‘귀국’할 길만 열린 것이다. 일단 들어와 기다리던 그에게 낭보가 전해졌다. 비자를 ‘F2’ 거주비자로 바꿔준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머리 속에서 번개가 번쩍했습니다. 이젠 아무 걱정 없이 유진이를 키우면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저보다도 공장 식구들과 이웃들이 더 좋아합니다.” 법무부에 진정서를 써주고, 유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동거인으로 주민등록에 올려준 고마운 사람들이다.이 가을이 다 가기 전, 푸르자는 유진이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이라도 가려고 한다. 단속이 무서워 아들과 함께 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가봤기 때문이다. ‘룩 인 유어 아이즈~’, 요즘 푸르자의 휴대전화에는 한국 사람들처럼 컬러링이 흐른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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