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돌봄 값싼 대우
(상) 돌봄노동이 엄마의 용돈벌이?
태어나 자라고
다치거나 병들고 늙어가는
생애 모든 과정에서
인간은
누구나 돌봄 수혜자이며
돌봄은 의존이 아닌 권리다.
가족도 하기 힘든 일…
그 일 대신하는 돌봄노동자
어째서 처우는 가볍고
책임만 이토록 무거운가
6년차 ‘아이돌보미’ 배민주(52)씨는 2016년 9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의 한 가정으로 출근하게 됐다. 마곡지구는 당시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었다. 지하철로 출근하기에 마땅치 않았고 노선 버스도 없었다. 시간당 6500원을 받으며 출퇴근에 택시비까지 써야 했던 배씨는 여성가족부에 “교통비를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건의했다가, 여가부 공무원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거 아이돌보미 선생님들 위한 사업 아닙니다. 중년 여성들 용돈 정도 버시라고 만든 사업이에요.” ‘용돈 임금’ 이상의 처우 개선은 바라지 말라는 뜻이었다.
재무컨설턴트로 일하던 배씨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2012년 일을 그만두고 평소 꿈꿨던 아이돌보미 일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 시행된 아이돌봄 서비스는 만 12살 이하 아동을 둔 맞벌이 가정에 돌보미가 직접 방문해 육아를 도와주는 사업이다. 서비스 만족도가 90점대에 이르는, 정부의 대표적인 육아지원정책이다. 이용 가구 소득에 따라 요금의 25~75%를 정부가 부담한다.
배씨는 돌보미 일을 시작한 뒤 수입이 4분의 1로 줄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돌보는 아이뿐 아니라 그 가정 전체가 자신의 도움으로 변화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배씨의 생각과 달랐다. 배씨는 “재무설계 할 때는 고객이 나를 전문가로 인정해주는 느낌이 들고 자긍심도 있었다. 한데 아이돌보미로 일하는 지금은 ‘저 부모가 날 어떤 식으로 볼까’ 하는 자괴감이 종종 든다”고 말했다.
사람은 태어나 자라고, 다치거나 병들고, 늙어가는 생애 모든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미국의 여성주의 정치이론가 조앤 트론토는 <돌봄 민주주의>에서 “인간은 누구나 돌봄 수혜자이며 돌봄은 의존이 아닌 권리”라고 말했다. 돌봄을 둘러싼 정책은 각종 선거 때마다 중요하게 떠오르는 사회적 관심사다. 돌봄노동의 공공성은 갈수록 높아지지만 현실은 이를 따르지 못한다.
■ 보육교사·간병도우미 99% 여성 과거에는 돌봄을 가족이, 더 정확히는 가족 내 여성이 맡았다. 시간이 지나며 ‘돌봄의 사회화’는 복지국가로 가는 주요 전제조건이 됐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0년대 중반부터 가족이 전적으로 책임져왔던 돌봄을 국가가 분담하며 덩치를 키웠다. 지금은 영유아를 산모·신생아도우미나 아이돌보미가, 아동·청소년기에는 보육교사와 유치원교사, 초등돌봄전담사, 아동복지교사가 돌본다. 장애인이나 노인은 사회복지사와 장애인활동보조인, 요양보호사, 가정관리사가 곁을 지킨다.
가족이 떠맡던 돌봄이 국가의 복지체계로, 또 노동시장으로 흘러왔지만 여전히 이는 여성의 몫이다. 지난 1월 여성가족부가 연 ‘1차 가족정책포럼’에서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가 발표한 ‘돌봄 민주주의와 지역사회 함께돌봄 정착 방안’을 보면 보육교사, 노인돌보미, 가사간병방문도우미 가운데 여성 비율은 99%대에 이른다. 요양보호사 역시 93∼95%가 여성이었다. 산모신생아도우미의 경우 3200여명 전원이 여성이다.
문제는 여성 일자리로 고착된 돌봄노동의 가치를 낮춰 보는 사회적 인식과 박한 처우의 악순환 구조다. 이미 심각한 고용차별을 겪는 50∼60대 여성은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보조생계자로서 돌봄노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돌봄노동은 ‘중년 여성에게 용돈 정도만 주면 되는 일’로 여겨진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한국은 짧은 기간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겪으며 돌봄의 사회화를 빠르게 진행했다. 적은 예산으로 급하게 양적 확대를 추진하다 보니 일자리 질은 떨어지고 인력의 여성화가 가속화됐다. 돌봄 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돌봄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일자리의 질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외려 돌봄 일자리에 대한 나쁜 처우와 낮은 인식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돌보미,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여러 돌봄 직종은 제도가 만들어진 지 올해 10여년째다.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을 맴돌아 가족 내 주수입원이 되지 못하고, 이용자 편의에 따라 짜놓은 근무 일정 탓에 단시간 근로자인데도 제대로 된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지금껏 돌봄노동자는 정책의 주된 관심 대상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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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김순심씨가 자신이 돌보는 노인과 함께 ‘미술 치료’를 하고 있다. 김씨는 “우리 일은 어르신에게 남은 잔존기능을 최대한 살려 가능한 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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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김순심씨가 매일 오후 찾아가는 가정의 지난달 서비스 일정표. 주 6일을 일하며 명절 연휴에도 이 틀만 쉬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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